작년 가을에 땅을 파고 묻은 튤립 구근.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듯 매혹적인 꽃잎을 피워냈다.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뜻밖의 소식은 늘 설레게 한다.
한동안 잊고 지낸 그 시간들을 위로하듯.
지난해 가을쯤 큰 기대 없이 튤립 구근을 심었다. 구근 하나에 몇 천원 쯤 한 것 같은데 와이프의 집요함(?)에 마당 한 구석에 구멍을 몇 개 파주었다. 구멍 이래 봤자 옛날 구슬치기할 때의 그 크기정도 밖에 안 되니 큰 힘 쓸 필요도 없어 선심 쓰듯 거들었다. 그런 후 시간은 흘러 올해 3월쯤 땅을 뚫고 초록 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개 올라오더니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4월의 끝자락이자 봄의 절정인 이때 튤립은 매혹적인 색깔의 꽃잎을 마구 뽐내고 있다. 수세기 전 황소 몇 백 마리를 팔아야 가질 수 있었다던 꽃을 이렇게 쉽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과나무 꽃도 올핸 더 풍성해 보이는 것이 열매가 많이 열릴 것만 같다.
라일락 나무의 꽃잎,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향기로움이 그윽하다.
이 붉은 꽃의 나무는 지금도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가만히 볼 뿐.
노란 꽃망울을 만드느라 분주한 황매화.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서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는 또 어떤가. 황매화도 ‘이젠 내 차례’라며 노란 꽃망울을 틔울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음은 장미, 철쭉이...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스스로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그 강인함에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한 걸까. 만물이 그 치열함을 이겨내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어쩌면 더 잔인한 광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어버린 겨울이 참 따뜻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봄에 와야 이름이 호명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