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S]월 만원 내고 5,000만원 혜택…해외이주자 '건보 먹튀'

‘구멍 뚫린 해외 이주자 관리’
이주신고 안하면 내국인으로 분류
입국 즉시 건보 가능 허점 노려
작년에만 267억어치 '꼼수 의료'

올해초 주한 미 대사관 앞에 시민들이 비자 인터뷰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4월1일 입국한 50세의 우리 국민 A씨. 출국 후 13년9개월 만에 입국한 그는 인천공항 도착과 동시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 일시정지 상태인 건강보험을 다시 살렸다. 해외이주자 신고를 하지 않은 만큼 지역의보 혜택을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날 한국에 들어오기 전 예약을 마친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급성 및 아급성 감염성 심내막염’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진단과 동시에 46일간의 입원치료와 수술이 이어졌다. 지역의보가입자 보험료로 지불한 금액은 매달 1만3,370원 수준. 그는 본인 부담금으로 387만4,460원을 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A씨의 치료비로 5,349만7,620원을 부담해야 했다. 결국 A씨는 석 달 동안 치료비 5,350만여원을 아낄 수 있었다. 수술 뒤 퇴원한 그는 6월에 인천공항을 통해 다시 출국했다. 얌체 의료 쇼핑이 마무리된 것이다. 해외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후 현지에 거주하는 해외이주자들이 한국 외교부와 해외공관을 통해 신청·접수할 수 있는 해외이주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내 거주자와 동일한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한 해 동안 해외 영주권자의 치료를 위해 267억여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로 이주해 건보료 납입이 중단된 해외이주자들이 한국 입국과 동시에 건보 혜택을 받아 건보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해외이주자 신고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24일 본지 탐사기획팀이 최도자 바른비래당의원실과 함께 ‘해외 출국 이후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한 내국인’ 중 지난해 입국해 건강보험에 가입한 뒤 2월18일까지 출국한 보험가입자의 보험급여 내역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 대한 건보 측의 급여 총액이 267억1,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아 내국인으로 분류된 얌체 의료 쇼핑자에 대한 1년 건강보험 급여 전수조사 결과로서 수치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얌체 의료 쇼핑의 당사자로 해외이주 신고를 완료한 내국인과 재외동포·외국인을 지목하고 건보재정 건전화와 얌체 의료 쇼핑 방지를 위해 이들이 입국 후 건강보험 가입자가 될 수 있는 체류 기준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하지만 이번 조사로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은 ‘해외 영주권자’의 얌체 의료 쇼핑이 성행하고 있고 그 규모가 지난 한 해 267억여원 규모인 것이 처음 확인된 셈이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해외로 이주한 자가 성실하게 해외이주자 신고를 하면 한국에 입국해도 6개월을 체류해야 건보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신고하지 않은 해외이주자는 입국과 동시에 건보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해외이주 후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내국인으로 분류되는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해외이주자 신고 제도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기준에 대한 철저한 보완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 구멍뚫린 해외이주자 관리…‘얌체 의료쇼핑’ 왜 판칠까

성실신고자 ‘거주 기준’ 역차별

건보 부과 기준일 ‘1일’만 피하면

보험료 안내고 건보혜택 누리기도

65세 이상 복수국적 허용따라

건보 위해 韓국적 재취득도 증가



정부의 해외이주자에 대한 부실한 관리로 인해 해외이주법이 정한 해외 이주 신고자는 역차별을 받는 반면 법을 따르지 않고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내국인과 동일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건강보험 적자의 원인으로 외국인의 지역의보 가입과 먹튀를 지목하고 이에 대한 규정 강화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이주자 신고를 마치지 않은 해외이주자(해외 영주권자 등)는 건강보험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해외이주 신고 안 하면 건보공단서 알 길 없어=외교부는 해외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부터 이민자로 간주하고 해외이주법에 따라 해외이주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외교부와 해외 현지 공관에서 접수된 해외이주자 신고는 외교부로 집계되고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공유된다. 따라서 해외이주자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행안부와 복지부·국민건강보험은 해외이주자 여부를 알 수 없게 돼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건강보험공단의 한 관계자는 “해외이주 신고를 안 할 경우 재외국민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지역의보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며 “입국 이후 매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지역의보에 가입하게 되면 건강보험의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이민자들이 건강보험 부과 기준일인 매월 1일을 피할 경우 10만원 내외의 건강 보험료도 내지 않은 채 건강보험 혜택이 가능하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보험료 부과일이 매달 1일로, 5월2일에 한국에 입국하고 지역의보에 가입하면 보험료 납입일이 지난 만큼 5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역의보에 가입이 완료된 만큼 5월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진료와 수술을 받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내국인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성실 신고자만 제재하는 국민건강보험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외국인과 재외국민 등은 국내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해야 지역의보 가입이 허용된다. 기존 3개월 거주 규정을 6개월로 강화하면서 외국인과 해외거주자들의 건강보험 먹튀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후 해외 공관에 해외이주자 신고를 마친 사람들은 한국에 입국해 30일 이상 국내 거주 의사를 밝히는 ‘재외국민 거소신고’를 마치고 6개월이 지난 후 지역의보 가입 신청을 해야 한다. 다만 한국에 있는 ‘기러기 아빠(부양자)’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해외이주 신고를 마쳐도 이들은 한국에 입국한 즉시 피부양자 자격으로 무료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제 해외이민 관련 인터넷 모임은 한국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기러기 아빠가 있을 경우 기러기 아빠가 건강보험 부양자가 되는 만큼 나머지 가족은 언제든지 한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글도 공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보 위해 국적 재취득도 증가=한국 국적을 포기한 국적 상실자(타국 국적 취득 이후 한국 국적 포기)와 국적 이탈자(선천적 복수국적자가 한국 국적 포기) 중 한국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65세부터 복수국적이 허용되는 만큼 65세 이후 국적 회복을 시도하는 사람의 비중이 전체 국적 회복자의 85%에 달할 정도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국적 회복자는 2,775명에 달하지만 이 중 60~90세 연령대의 국적 회복자는 2,393명으로 전체의 86.2%에 이른다. 이주공사의 한 관계자는 “병원비가 무료인 캐나다의 경우 진료를 받기 위해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하고 미국의 경우 약간의 재산만 있어도 고가의 민간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따라서 복수국적이 허용되는 65세 이후부터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해 건강보험료와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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