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말부터는 보험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리스크로 반영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보험업계의 지급여력(RBC) 비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보험사들은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이에 따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에 따라 자본확충 노력을 해왔지만 일부 중소보험사는 금융당국의 권고 수준인 RBC 비율 150%를 맞추기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에 대한 위험액을 RBC 비율 산출에 적용하는 비율이 6월 말부터 70%로 늘어난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에 대한 위험액을 보험사 요구자본(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의 손실금액)에 단계적으로 반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35%가 적용된 데 이어 올해 70%, 내년에는 100%로 확대를 앞두고 있다. 요구자본 증가는 RBC 비율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험사는 이를 반영해 미리 자본을 확충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큰 생명보험사는 삼성생명(24조6,140억원), 교보생명(6조4,834억원), 한화생명(4조1,971억원), 미래에셋생명(3조7,753억원) 등이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삼성화재(3조8,043억원), KB손해보험(2조8,559억원), 롯데손해보험(2조5,250억원) 순으로 적립금 규모가 많다. 게다가 생보·손보 업계를 통틀어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형의 비중은 97%에 달한다.
대형 보험사들은 그나마 견딜 만하지만 덩치가 작으면서도 퇴직연금 적립금이 많은 중소 보험사들은 RBC 비율 관리에 초비상이다.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으면서 RBC 비율이 낮은 롯데손해보험이나 연금 특화 보험사인 IBK연금보험 등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RBC 비율이 155.4%였던 롯데손해보험은 퇴직연금 리스크 반영 확대로 20% 정도의 RBC 비율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롯데손보는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리밸런싱과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증자 등 각종 자본확충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손보 새 주인으로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 같은 자본확충 이슈가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7,650억원으로 많지 않은 흥국생명은 퇴직연금제도 강화로 인한 RBC 비율(2018년 말 기준 186%) 하락폭은 1.3%포인트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업계 평균치를 밑도는 RBC 비율에다 신규 투자 포트폴리오를 안전자산 중심으로 구성하면서 외형 성장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지난해 상반기 RBC 비율이 150%에 못 미쳐 가장 우려가 컸던 푸본현대생명은 지난해 9월 푸본그룹의 증자로 RBC 비율이 297%로 안정화됐지만 퇴직연금 리스크 추가 적용으로 RBC 비율이 20%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들은 IFRS17과 관련해 대부분 자본확충, 시스템 구축 등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쳤지만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IFRS17 시행 시기가 더 연기됐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