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법 개정안을 놓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중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전자투표 의무화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특히 국내외 행동주의펀드(헤지펀드)들이 1개 지주회사의 지분 1%(상장사 0.01%)만 소유하면 10개 이상의 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상법을 개정하려는 의도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법무부는 상법 자체의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취지다. ‘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화’와 ‘상법의 글로벌 스탠더드화’는 분명 다른 의미다.
최근의 국제적 흐름을 보면 주주권 강화 및 보호, 의사결정 기구의 정상화, 기업의 경영 투명성 확보 및 책임경영이 중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일감 빼돌리기’ 등 자회사 이사진의 불법 행위가 있어도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해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의 대응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다. 자회사나 자회사의 주주인 모회사가 자회사 이사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회복하지 않는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기업이 주주들과 자주 소통하고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자투표제를 시행하기 위한 기반시설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잘 보급돼 있지만 기업들의 반대로 전자투표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해 주주들이 주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다면 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제도가 도입되면 국내외 행동주의펀드들이 하나의 지주회사 지분 1%만으로 10개 이상의 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이사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배상시키는 것은 회사의 자산을 충실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회사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우리 기업을 한 단계 성장시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함으로써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한발 더 나아가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