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서초구 대건빌딩에서 조상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단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법률구조공단
“국회에 계류된 임금채권보장법이 통과되면 공단이 처리하던 임금체불 사건이 급감해 재정 상황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고비용 임금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최장 11년 임기제 변호사 제도를 도입하고 기존 변호사들의 임금 체계도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조상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30일 서울 서초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단이 처한 환경의 변화와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설명하며 “취임 후 공단을 실사하면서 내린 결론은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이사장이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조 이사장은 공단이 앞으로 인건비를 감축하지 못하면 재정난을 겪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고용노동부로부터 체불임금 사건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지원금(지난해 기준 253억원)을 받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된 임금채권보장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지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개정안에 의하면 노동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체불임금확인서를 노동부에 제출하면 바로 밀린 돈을 지급받을 수 있어서 공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부는 시행령 상에 400만원인 해당 금액을 1,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따라서 법과 시행령이 개정되면 현재 공단에서 처리하는 체불임금사건(지난해 기준 9만4,939건)이 70% 가량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가 지급하는 지원금도 대폭 감소할 것이란 계산이다. 지난해 공단은 △국고보조금 482만9,900만원 △사업수익 466만900만원 △사업외수익 25억6,800만원 등 총 974억7,600만원의 수입을 거뒀으며, 이를 △인건비 520억1,200만원과 △사업비 428억1,700만원 △경상경비 26억4,700만원 등으로 지출했다. 각종 지원금과 보조금은 사업수익에 포함되는데 이 수익이 100억원가량 줄어들어 인건비 지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이사장은 “국고보조금 중 순수 인건비로는 392억원이 쓰이며 사업수익 등으로 인건비 140억원을 추가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 수입이 줄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들이 로스쿨에 많이 진학하면서 공익법무관 공급이 급감하는 것도 공단으로선 위기 요인이다. 공익법무관은 현재 120명인데 7월 말까지 총 60여명이 전역하되 충원은 20~30명 수준에 그칠 예정이다. 조 이사장은 “공익법무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공단 운영에 큰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임기제 변호사와 임금구조 개선 등을 고안하고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변호사를 정년이 65세인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연봉 7,000만원 수준으로 최장 11년 동안 근무하는 임기제로 채용하는 방안이다. 다만 올해 초 소속 변호사 노동조합이 청년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자 협의를 거쳐 임기제와 정규직을 일정 비율로 채용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조 이사장은 “청년 변호사들이 공단에서 진취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경험 쌓아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이라며 “조만간 10명의 변호사를 임기제 반, 정규직 반으로 신규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이에 더해 변호사 인건비 149억6,000만원 가운데 21억8,000만원을 차지하는 소송성과급도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공단의 가급 변호사들은 검사에 준하는 급여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변호사 전체의 사건 처리 실적 등으로 쌓인 소송성과급을 호봉 등에 따라 추가로 나눠받고 있다. 소송성과급은 1인당 연 1,900만~3,000만원 수준이다. 조 이사장은 “소송성과급과 판례수집 및 소송지도활동비 등 임금체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 이사장의 시책에 대해 변호사 노조 측은 ‘반의 반쪽짜리 인력 개편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일반직과 서무직의 인건비(지난해 기준 385억원)는 그대로 둔 채 변호사에게만 부담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입직 10년여가 지나 5급으로 승진한 일반직은 연봉이 7,000만원인데 이들이 200여명 상당에 달하며, 부장·팀장 등 보직자는 연봉 1억원이 넘어가는데 변호사 연봉만 문제 삼는다는 지적이다. 신준익 변호사노조 위원장은 “왜 조 이사장은 21억원에 불과한 변호사의 소송성과급만 건드리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만약 일반직도 같이 고통분담을 한다면 우리의 수당을 깎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익법무관이 급감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일반직이 퇴직하는 인원 수를 변호사 채용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이사장은 일반직의 경우 상대적으로 변호사보다 임금이 높지 않으며 또 최근 정년퇴직자과 임금피크제 적용자가 늘며 인건비가 점차 줄게 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 이사장은 “일반직은 5급으로 승진하려면 내부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30년 근무해도 연봉이 1억원 상당”이라며 “공단이 설립된 지 32년이 지나 일반직들 가운데 정년 퇴직자가 늘고 있으며 임금피크제 대상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채권보장법이 실행되면 재정이 얼마나 줄어들지 몰라서 일반직은 신규 채용을 전면 중단한 상황”이라며 “일반직에 할당된 인건비 예산으로 변호사를 뽑는 것이 가능한지는 검토해봐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또 이번 신규 변호사 채용에서 정규직과 임기제의 경쟁률을 살펴보고 향후 채용 비율에도 유연하게 반영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