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13년만의 기회였는데...하나금융, 카드 M&A 전략적 후퇴?

‘13년 만에 찾아온 기회가 날아갔다.’

하나금융지주(086790)의 롯데카드 인수가 무산되자 내부에서 2006년 LG카드 인수 무산 이후 두 번째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쏟아지고 있다. 대형금융그룹이면서도 좀처럼 인수합병(M&A)시장에 등장하지 않던 하나금융이 오랜만에 나선 롯데카드 인수에 뛰어 들었지만 결과는 사모펀드(PEF)의 승.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 실패는 갈수록 입찰 경쟁이 치열해지는 M&A 업계의 특성과 동종업계에 사업을 넘기길 꺼려 했던 롯데그룹의 의중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물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롯데카드의 인수가격이 계속 올라가자 하나금융이 곧 나올 수 있는 차기 매물을 노렸다는 평가도 있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19일 첫 본입찰 당시만 해도 비교적 우위에 있었다. 경쟁자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에 비해 유일한 금융그룹인데다 증자로 1조원의 실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보통 인수금의 절반 이상은 대출을 통해 조달하기 때문에 하나금융의 자금 여력이 낮지는 않았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은행에서 나오는 배당과 신종자본증권발행 등을 더하면 최대 1조 7,000억 원까지도 자금 여력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나금융이 골머리를 앓던 대주주적격심사 문제도 실제로는 큰 변수가 되지 않았다. 하나금융은 계열사를 통해 2017년 UBS자산운용을 인수한 뒤, 현재까지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적격심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순실 사태 여파에 휘말린 하나은행의 전 행장 등이 검찰 수사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롯데카드는 하나금융지주가 나섰고, 자회사편입심사이기 때문에 대주주적격심사와 다르다는 게 하나금융의 주장이었다. 이는 인수자인 롯데 측도 일정 부분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을 직접 찾아가고 금융당국이 반대한 은행장 연임 문제도 백지화 되며 ‘인가 리스크’는 한 층 줄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짜 본선이 됐던 지난달 29일 2차 입찰에서 하나금융은 경쟁자에 뒤진 것으로 파악됐다. MBK파트너스는 뒤늦게 우리은행을 공동투자자로 유치했고, 금액 역시 한앤컴퍼니와 엇비슷하게 제출했다. 한앤컴퍼니는 가격은 물론 고객정보공유나 기존 롯데그룹 물량 보장 등에서 현행법에 조금이라도 저촉되면 안된다는 롯데그룹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반면 하나금융은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고객정보 공유나 기존 계약 보장 등에서 경쟁자보다 강하게 주장하면서 롯데그룹과 이해관계가 엇갈렸다는 후문이다. 인수 지분도 한앤컴퍼니와 MBK-우리은행 컨소시엄은 각각 80%를 제시했지만 하나금융은 70% 남짓을 제안해서 롯데 입장에서는 한 번에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하나금융지주로서는 2006년 LG카드 인수에서 신한금융그룹에 고배를 마신 후 두 번째 낙마다. 당시 하나금융그룹은 MBK파트너스와 합을 이뤘고, 신한금융그룹은 단독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김승유 전 회장이 주도했던 입찰에서는 막판까지 가격을 놓고 저울질했다. 결과는 주당 100원을 많이 쓴 신한금융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만해도 몸집이 작았던 신한금융은 이후 보험 ·증권 등 굵직한 M&A에 성공하며 현재는 KB금융(105560)과 1~2위를 다투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하나카드는 2014년 외환카드와 합병하면서 급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당시 카드업계에서는 업계 상위권에 뛰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합병 후 5년째 하나카드는 업계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막판에 한앤컴퍼니가 부상한 이유는 롯데그룹이 카드업을 넘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입찰에 뛰어들었던 한화그룹이 중간에 빠진 것도 유통업에서 경쟁하는 양사 간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었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은행계 카드사 역시 결국엔 롯데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앤컴퍼니에 팔면 앞으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시 재인수를 노릴 수 있고, 롯데그룹의 고객 정보를 경쟁자에 주지 않아도 된다.

하나금융은 한앤컴퍼니로와 롯데카드 공동투자에 나서거나 수년 뒤에 한앤컴퍼니로부터 롯데카드를 되사는 방법, 혹은 또 다른 카드사 인수를 노리는 대안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인수가가 크게 높아질 수 있고, 날로 악화하는 카드시장에서 적극적인 인수에 나서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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