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희의 똑똑!일본]담배 피우면 채용 안한다고요?

⑥담배 포위망 좁히는 정부·기업의 금연 대책
식당·공공장소 흡연실 등 '담배천국' 불렸지만
옥내 흡연 제재 법 개정, 흡연자 채용 배제 등
잇따른 강경책 속 "채용 연계는 심해" 비판도
올림픽 맞물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분위기

도쿄도가 내년 4월 간접 흡연 방지 조례 시행을 앞두고 지난 4월부터 도내 점포에 배포한 금연 관련 스티커. 내년 4월 1일부터 종업원이 있는 점포는 ‘금연’을 알리는 스티커를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사진=도쿄도

도쿄 아오야마의 한 라멘 가게. 매장 한쪽 구석에 특이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오후 7시 이후부터 흡연 가능.’ 금연이면 금연이고 흡연이면 흡연이지 시간에 따라 가부가 바뀌는 것은 또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생소할 법한 구분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버스 정류장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나 대형 빌딩, 심지어 신칸센 한쪽에 아직도 ‘흡연 공간’을 두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시간 구분 없이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동시에 이용하는 음식점·커피점도 여전히 많다. 카페 체인점 ‘도토루’와 ‘벨로체’가 대표적이다. 이들 커피숍은 흡연층 또는 흡연실을 따로 두고 있지만, 사실상 구분의 의미는 없다.

일본의 담배 사랑은 흡연율에서도 엿볼 수 있다. OECD가 2015년 회원국 15세 이상 남성의 흡연자 비율을 조사한 결과 일본은 30.1%로 전체 평균(24.2%)을 웃돌았다. 물론 이 수치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 일본담배산업(JT)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일본의 성인 남성 흡연자 비율은 27.8%, 남녀 합계 평균은 17.9%였다.

일본 도쿄의 신주쿠 역에는 흡연자를 위한 대형 흡연실이 설치돼 있다./송주희기자

‘흡연자 천국’ 일본에서도 그러나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간접 흡연 방지’ 강화가 추진되는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건강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외식업체와 일반 기업체가 잇따라 금연화에 나선 것이다. 일본 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따르면 ▲객석 면적이 100㎡를 초과하거나 ▲자본금이 5,000만 엔을 넘는 경우 ▲ 2020년 4월 1일 이후 개업 신규 점포일 경우(3개 기준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옥내 흡연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일본 전체 음식점 중 45%가 이 조건에 해당한다. 경영적 판단에 따라 흡연 장소가 필요할 경우 흡연 전용실을 설치해야 하지만, 궐련 담배는 전용실이라고 해도 흡연과 식사를 같이 할 수 없다. 전자담배는 별도의 전용실에서 식사와 흡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시설 관리자는 50만엔 이하, 흡연자는 30만엔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올림픽을 앞둔 도쿄도의 ‘간접 흡연 방지 조례’는 훨씬 더 엄격하다. 도쿄도 조례는 식당 면적과 무관하게 고용된 직원이 있으면 전면 금연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의 건강은 물론 간접흡연에 노출된 종업원들의 노동 환경까지 챙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정부는 현재 17.9%인 성인 흡연율을 2022년까지 12%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전석 금연 계획을 알리는 패밀리레스토랑 ‘사이제리아’의 안내 포스터. ‘좀 더 맛있게, 좀 더 즐겁게’라는 문구가 써있다./사진=사이제리아 홈페이지

정부와 지자체의 강력한 드라이브 속에 대형 외식 업체들도 잇따라 관련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코코스’와 ‘사이제리아’는 올 9월, 햄버거 체인 ‘모스버거’가 내년 3월까지 전석 금연을 완료하기로 했다. 코코스의 경우 전체 점포(583개)의 80% 이상이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시간대 흡연 가능 장소’였지만, 이 같은 구분도 아예 없애기로 했다.

도쿄도 내 주택가에 ‘걸으면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송주희기자

외식업체에 이어 일반 기업까지 이 같은 정책에 동참하면서 일본 내 흡연자의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 내 21개 기업과 도쿄도 의사회, 일본 암 협회 등은 ‘금연 추진 기업 컨소시엄’을 만들어 참여 기업의 흡연율 감소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직원 흡연 감소 목표를 설정해 정기적으로 공표하고, 금연 사례를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부터 전 직원의 근무 시간 금연을 실시한 손보재팬닛폰코아히마와리 생명보험은 금연을 신규 채용의 조건으로도 내걸었다. 오바 야스히로 사장은 “임원 취임 시엔 금연 규정에 동의하는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며 “2020년 봄에 입사하는 신입 사원도 흡연자는 채용하지 않을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미 호시노 리조트, 화이자 등이 흡연자를 신입사원 채용에서 제외하고 있다.

강력한 금연 정책을 둘러싸고는 일본 내에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담뱃세의 대폭 증세에 이어 개인의 기호를 채용에까지 연계하는 것은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쾌적한 근무 환경 조성’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흡연자의 설 곳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게 분명해 보인다.

담배 혐오가 극대화된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그린 소설 ‘최후의 끽연자’/사진=작가정신

‘개와 흡연자는 출입금지.’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 ‘최후의 끽연자’(1987)는 담배 혐오가 극대화돼 흡연자가 범죄자와 동일시되는 가상의 일본을 그린다. 경찰에 쫓기던 주인공은 국회의사당 꼭대기에서 남은 담배를 다 피운 뒤 투신하지만, ‘최후의 흡연자’를 전시하려는 경찰의 그물에 포획된다. ‘흡연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공원이나 상점 앞에 내걸리거나 ‘나는 담배 연기가 싫다’라는 문구가 명함에 기재되는 소설 속 상황은 그러나 마냥 상상이 아닌 ‘곧 다가올’ 혹은 ‘이미 다가온’ 현실인 듯하다. 흡연 문제에서만큼은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일본에서도 ‘담배 포위망’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