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칼럼] 약화하는 WTO 다자무역체제에 대비해야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美전략에 분쟁해결기구 역할못해
WTO 개혁·대체기구 논의도 부진
결국 수출지원책 외엔 돌파구없어
양자-지역간 통상체제 강화시켜야


세계무역기구(WTO)의 앞날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WTO에 대한 미 통상당국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꽤 오래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O 탈퇴를 언급하기도 했다. 7년에 걸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으로 지난 1995년 설립된 WTO 발전의 중요 시점에 미국은 발을 빼고는 했다. 2001년 시작된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에서 미국은 자국의 입장 관철이 어려워지자 소극적 대응으로 전환했고 이때부터 WTO의 힘이 빠지는 조짐을 보였다. 2013년 말 ‘발리패키지’라는 명칭으로 무역원활화 등 민감성이 덜한 내용을 모아 DDA 스몰딜에 합의했으나 미국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제조업 관세 인하에 주력했다면 WTO는 규율 대상을 확대하고 이행 수준을 강화해 오늘날 국제통상 체제를 확립했다. 농업을 포함한 전 품목에 대한 예외없는 자유화를 추구하면서 무역규범, 위생검역(SPS), 기술장벽(TBT), 지식재산권, 서비스, 투자 등 오늘날 국제통상 이슈 대부분을 관장하게 됐다. 무역정책검토기구(TPR)를 신설해 회원국의 무역 정책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WTO 규범에 합치하지 않는 정책이나 규제를 개선시키도록 하는 절차도 도입했다.

또 GATT 체제하에 도입했던 분쟁해결기구(DSB)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해 회원국 간 분쟁을 국제통상 규범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WTO 체제하에서 통상분쟁은 크게 협의, 패널재판(제1심) 및 상소기구(제2심)로 구분된다. 특정 회원국이 제소한 사안이 협의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패널이 구성되고 6개월 이내에 패널 보고서가 작성된다. 패소국이 상소하면 상소심이 진행되며 최대 90일 이내 최종판정을 내리게 된다.


2015년 일본이 제소했던 우리나라 수산물 규제에 대해 지난달 11일 WTO 상소기구가 우리나라의 승소를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심인 패널에서 일본은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한일의 기준치인 1㎏당 100㏃보다 낮게 검출됐다는 점을 강조해 우리나라의 패소를 이끌어냈다. 상소심에서 우리나라는 공기·토양·물 등이 방사성물질 누출 이전 상황으로 전환됐다는 증빙을 일본이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제기해 승소할 수 있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통상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WTO DSB 내부를 들여다보면 걱정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상소위원 7명이 정원인데 현재 3명만 근무하고 있고 그나마 오는 12월이면 2명의 임기가 완료돼 1명만 남는다. 상소심은 3명으로 구성되는데 1명만 있으면 WTO 분쟁해결 절차가 전면 중단된다.

상소위원은 탁월한 통상법 전문가로 대륙별 안배 등을 고려해 WTO 전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선임하게 돼 있는데 미국이 상소위원 임명을 반대하면서 결원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과거 WTO 분쟁해결 절차에서 미국이 패소한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과도하게 자국 이기적인 무역수단을 도입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미국을 제소하자 부담을 느낀 미국은 상소위원의 신규 임명을 보이콧해 DSB와 WTO 자체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미국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WTO 다자무역체제 약화는 불가피하다. 몇 년 전부터 WTO 개혁 논의가 시작됐지만 DSB 역할을 정상화하거나 대체기구에 대한 논의는 부진하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 간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미국의 눈치를 의식하고 있는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이 나설지 의문이다. 결국 수출지원책을 강화하는 방법 외 뚜렷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백화점식 수출지원 정책을 효율성 위주로 하루빨리 재정비해 수출활력을 확충해야 한다. 신남방-신북방 정책도 기업의 해외 진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내실을 기하고 양자 간-지역 간 통상협력 체제를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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