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ISD 패소문 공개안하는 금융위원회

백주연 사회부 기자


“재판부가 내용을 확인하고 결정하겠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지하 208호 법정. 변론을 끝내는 제14부 재판장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란 다야니 가문을 상대로 한국이 패배한 ‘투자자국가소송(ISD)’ 판정문이 서류철 속에 담겨 재판부에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원고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와 피고인 금융위원회 측 사이에는 긴장감과 적막함이 감돌았다.

2010년 578억원을 지급하며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나섰던 이란 다야니 가문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이 자금 부족을 주장하면서 계약 성사에 실패했다. 이후 다야니는 유엔국제상거래위원회(UNCITRAL)에 중재를 제기했고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다야니에 이자를 포함해 약 730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수백억원의 혈세가 나가게 된 만큼 민변은 국민의 알 권리를 근거로 판정문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정보공개법상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판정문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정보공개 청구소송으로 이어졌다.

기자가 금융위 측에 판정문 비공개 사유를 물었으나 금융위는 이 역시 재판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른 방면으로 취재한 결과 △영국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 △영업비밀 보호 △외교관계의 특수성 △결론이 나지 않은 행정과정 등이 비공개 사유였다. 법원은 이 중 다른 사유들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하고 ‘재판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점만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유도 판정문 공개를 거부하기에는 명분이 크지 않다. 정부가 영국고등법원에 제기한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는 이란과 한국 사이에 결정된 중재판정의 실체적 사실을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ISD를 진행한 중재판정부에 관할이 있느냐, 없느냐가 쟁점이다.

아울러 중재판정 취소소송이 일단락된다고 해도 정부가 이란 다야니 측과 맺은 비밀유지 약정으로 인해 판정문 공개는 불투명하다. 금융위 공무원들이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비밀약정을 맺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론스타·엘리엇 등 한국 정부가 제소된 ISD 사건들이 여전히 많다. 부정적인 여론을 회피하기보다는 판정문을 공개해 앞으로 발생할 사건들을 철저히 준비하는 계기로 삼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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