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원화 값이 급락하는 등 글로벌 시장이 요동쳤다. 성장률 하락과 수출 감소 등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협상이라는 거대 악재가 불거지자 글로벌 자금이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몰린 탓이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원60전 오른 1,17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집회에서 “중국이 합의를 깨트렸다”며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율은 1,177원40전까지 뛰었다. 장중 기준으로 지난 2017년 1월20일의 1,177원70전 이후 최고치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중국 상무부가 미국과 유럽연합(EU)산 고성능 스테인리스강관(불수무봉강관)에 적용하던 반덤핑 관세를 계속 부과할 방침을 내비치는 등 맞대응에 나선 것도 환율 상승을 이끌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이날 “위안화가 전날 대비 0.5% 가까이 하락하면서 위안화와 연동된 원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후 환율 급등에 따른 우려에 일부 달러 팔자가 나오면서 1,173원대로 떨어졌으나 무역협상에 대한 우려감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1,180원대 턱밑까지 치솟아 결국 1,179원80전에 거래를 마쳤다.
정부는 이날 구두개입을 자제했다. 최근 환율 상승의 원인이 대외적 요인에 주로 기인하는 만큼 즉각적인 개입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시장에서는 국내 경기 둔화 흐름, 수출 감소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축소 등 경제 펀더멘털이 흔들리는 와중에 미중 무역협상과 외국인투자가의 배당금 송금 수요 등 악재가 불거지면서 환율 상승 폭을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 값 하락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며 “협상의 타결 여부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되기 전까지 환율은 계속 오를 것”이라며 “1,190선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국내 경제에 대한 불신이 환율을 떠받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조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경상수지 흑자 축소에 따른 달러 공급 감소가 환율 상승의 원인 중 하나”라며 “여기에 미국이 당분간 금리동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전망이 확산되는 반면 한국은 경기둔화로 인한 금리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된 것도 환율 상승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회복되거나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지 않을 경우 원·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경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중 무역협상 타결 이후에도 환율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미 금리 역전 당시에도 자금 유출이 일어나지 않은 만큼 급격한 유출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며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급격한 경기침체와 경상수지 적자 기조가 지속돼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