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찰청 외근정보관(IO)들이 사용하던 서울 한남동 정보분실이 폐쇄되면서 IO들이 사용하던 외부 사무실은 완전히 사라졌다. /연합뉴스
“정보경찰 개혁으로 미근동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생활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출퇴근 시간 없이 자유롭게 다닌다는 것은 다 옛날 얘기입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죠.” 정보경찰 개혁이 추진되면서 뒤바뀐 일상을 경찰청 정보국 소속의 한 경찰관은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해 경찰은 경찰개혁추진위원회가 권고한 개혁안을 받아들여 정보경찰 대수술에 나섰다. 일단 지난해 10월 정보경찰의 상징인 ‘한남동 분실’이 폐쇄되고 외근정보관(IO)들의 언론사·기업 등 민간기관 출입도 금지됐다.
검찰이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연이어 경찰 수장을 지낸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대해 불법 정보수집과 정치관여 의혹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정보경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전직 경찰청장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이른바 ‘친박’ 정치인을 위한 맞춤형 선거정보를 수집하는 등 공무원 선거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하고 대통령과 여당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세력을 사찰하는 등 정치적 중립 의무에 반하는 위법한 정보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정보경찰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역대 정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보경찰을 수족처럼 부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현직 치안감이 “선거 관련 문건 작성은 수십년간 계속된 관행이었고 정무직 공무원을 보필하러 청와대에 갔으니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경찰이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관행’과 ‘흑역사’를 끊기 위해 정보경찰의 조직과 역할 축소를 주요 경찰 개혁과제로 삼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경찰개혁위원회는 ‘정보경찰 개혁방안’ 권고안을 경찰청에 제출했다. 경찰청이 경찰개혁위 권고에 따라 조직 축소 등 이행조치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보경찰이 정치개입과 같은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정보를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접근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정보경찰의 활동이 정치개입 및 민간 사찰에 이용된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보경찰은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명시된 경찰 직무 중 ‘치안정보의 수집과 작성 및 배포’에 근거를 둔 조직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경찰과는 별도의 개념인 행정경찰 성격이다. 경찰청 정보국 아래로 각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한다.
경찰은 경찰개혁위의 권고안에 따라 개혁 이행조치를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대표적으로 민간 사찰 및 정치개입 우려가 있는 시민단체와 종교기관 등 민간기관 및 정당의 상시 출입을 지난해 5월부터 금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정보국은 4개 과로 나뉘어 1과가 서무 및 정보경찰 개혁, 2과는 정책 관련, 3과는 집회, 4과는 정부부처 기관 등을 담당한다”면서 “과거 4과에서 기업과 언론사 등을 출입했는데 지금은 정부부처 출입만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직 규모도 줄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지방경찰청 17곳에서 활동하는 정보경찰은 기존 3,200여명에서 약 11.3% 감소해 2,979명이다. IO들의 활동범위가 줄면서 외근 정보관 상당수가 내근직으로 전환되거나 다른 부서로 배치되기도 했다. 과거 IO로 활동하던 한 경찰관은 “일부에서는 아직도 정보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지만 지금의 정보경찰은 손과 발을 다 묶어놓은 상황”이라며 “정보경찰이 좋았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정보경찰의 축소 움직임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운영에 필요한 치안정보는 필수인데 지난 정부에서의 민간 사찰 및 정치개입 논란으로 정보경찰 조직 전체의 활동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해외 선진국 사례를 보면 테러 등에 대비해 오히려 정보경찰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갈수록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직 축소보다는 경찰이 수집한 정보를 정치권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는 게 개혁의 핵심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보경찰의 정치개입과 민간 사찰 등 일련의 논란은 경찰의 단독행동이 아니라 정치권이 요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경찰 혼자 특정 단체나 정치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흠집 내기를 하거나 악용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치권에 책임을 묻는 게 정보경찰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서도 정보경찰의 정치개입, 민간 사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2월 공개한 경찰청 정보2과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은 4,300여건에 이르는 인사검증 대상자 보고를 했다. 또 공공기관장·감사 등에 대한 복무점검 285건뿐 아니라 지난해 상반기에만 장·차관 75명에 대한 복무점검도 보고했다. 정보경찰 개혁을 외친 현 정부에서도 정치개입 논란이 이는 것은 정보경찰 활동범위 규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이 1월22일 발표한 정보경찰 활동규칙 제정안에는 치안정보 악용이 가능한 허점이 있다. 일례로 제8조 1호는 ‘정보관은 언론·교육·종교·시민사회단체·기업 등 민간단체 및 정당 사무소에 상시적인 출입을 하지 아니한다. 다만 제4조에 규정된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일시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가운데 훈령에 남겨둔 빈 공간도 완전히 차단하려는 취지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주목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정보경찰의 자의적인 정보수집활동을 막고 경찰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경찰개혁 관련법 개정안 4건을 대표발의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안을 통해 정보활동을 법적으로 재규정 및 제한하는 것은 진일보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치안정보와 ‘정치정보’의 구분이 실무상 어려울 수 있는데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구민·최성욱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