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시코르스키가 중절모를 쓰고 직접 시험비행하는 VS-300. 지난 1940년 등장한 이 헬기는 오늘날 대부분 헬기의 직접적인 조상 격이다. /위키피디아
지난 1940년 5월13일, 미국 코네티컷주 남부 스트랫퍼드 시코르스키 항공사. ‘VS-300’이 수직으로 떠올랐다. 최초의 실용 헬리콥터가 처음으로 자유비행한 순간이다. 바우트시코르스키(Vought-Sikorsky) 항공사가 제작한 이 기체의 첫 비행은 8개월 전인 1939년 9월. 사고에 대비해 기체를 케이블로 묶은데다 1m 높이를 10여초 비행했을 뿐이었으나 1940년 5월 자유비행에서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았다. 조종간은 러시아 출신의 사장 이고르 시코르스키가 직접 잡았다.
만 50세 생일을 열흘 남짓 앞둔 시코르스키는 성공에 고무돼 일주일 뒤 VS-300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엔진 출력이 강화된 VS-300은 1년 뒤인 1941년 5월, 1시간32분26초 동안 비행하며 실용성을 뽐냈다. 착륙장치에 부유물을 달아 수상 이착륙에도 성공, 최초의 수륙양용 헬기라는 영예도 안았다. 헬기의 원리는 중국은 물론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설계도를 남기고 20세기 들어 프랑스와 독일에서 기체가 제작됐으나 VS-300이 최초의 실용기체로 인정받는 이유는 세 가지에서다.
첫째, 단일 로터(주 회전날개)로 수직이착륙과 전진, 제자리 비행이 가능했다. 둘째, 미익 로터(꼬리 회전날개)를 달았다. 초기 헬기의 가장 큰 난제였던 토크(torque·주 날개의 회전 반대방향으로 기체가 돌아가는 현상)가 미익 로터 덕분에 잡혔다. 셋째, 실용화 모델 개발로 이어졌다. VS-300의 후계 기종인 R-4 헬기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31대가 양산돼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구조용으로 쓰였다. 헬기 운용이 본격화한 시기는 한국전쟁이다. 미 해병대가 1951년 9월 펀치볼 고지 정상에 병력과 물자를 수송한 뒤 각국은 헬기 운용에 달려들었다. 당시 투입된 시코르스키 H-19는 1,728대가 생산돼 최초의 양산형 군용헬기이자 한국군이 운용한 최초의 헬기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VS-300 헬기 등장 79년. 기술 발전이 눈부시지만 그늘도 있다. 1966년 처음 등장한 CH-53 헬기의 최신 모델(CH-53K)의 대당 가격은 1억3,100만달러, 미 육군의 차세대 고속헬기 가격은 이보다도 높다. 스코르스키가 주장했던 VS-300의 제작비 3만달러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기술 진보에 따라 가격도 내려가는 컴퓨터 같은 문명의 이기와 달리 무기 가격은 높아져만 간다.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