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권 중앙대 교수
용어의 취지에 동의하든 그러지 않든 최근의 개헌론은 ‘제왕적 대통령’ 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돼왔다. 그러나 지난 1987년 민주화 후 일정 기간 개헌론의 중요한 화두는 ‘여소야대 극복’이었다.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등장했고 이듬해에는 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하는 총선이 치러지면서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나타났다. 3김과 노태우 대통령이 대립한 13대 국회가 그것이다. 이를 대한 노 대통령의 해법은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여소야대가 등장하면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고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 혹은 인접한 시기에 함께 실시하는 ‘동시선거’ 논의가 비중 있게 등장했다. 인기 있는 대선후보의 지지도에 힘입어 해당 후보의 소속 정당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여소야대도 없어지리라는 논리였다. 대선과 총선 선거주기의 동조화를 골자로 하는 것이었으나 논의만 무성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패스트트랙에 여야 4당이 함께 추진한 선거법 개정안이 올라타면서 오는 2020년 이후 여소야대 국회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론도 가능하다. 여당이 총선 전에 상당한 정당지지율을 보이고 제2당이나 기타 정당이 부진할 경우 여당이 단독 다수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다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여야 4당이 최근 합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는 이런 가능성을 상당히 줄였다. 과거 제20대 총선에 임한 주요 정당을 놓고 정당투표율에 따라 준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해보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꽤 줄어드는 반면 국민의당이나 정의당의 의석은 상당히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법이 통과되더라도 총선 전에 정당지지율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양대 정당 중심의 약한 다당제가 보다 강한 형태의 다당제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선거제도가 정착되면 여소야대 현상이 일상화될 수 있어 대통령제와의 정합성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미래 국회에 대한 상상이지만 지금보다 강한 다당제가 정착될 경우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 강성대책 순으로 보면 합당, 연합형 대통령제, 정책연합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아니면 국민의 공감대와 정치권의 합의로 권력구조의 변경을 도모하는 개헌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먼저 합당은 매우 인위적이고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개별 정당을 선택한 국민의 의사가 무시되는 결과이므로 바람직하지 않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연합형 대통령제다. 남미 국가 등 파편화된 다당 체계하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대통령 소속 정당의 원내 의석 점유율이 다수에 훨씬 못 미쳐 다른 정당 소속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해 정부연합을 형성하는 경우이다. 즉 대통령이 각료 임명권을 마치 의회제 국가에서 총리가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관건은 정부연합에 참여하는 정당 간의 협상 타결 여부, 개별 의원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 여부 등인데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견제능력이 약화될 수 있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도라 수용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다음으로는 정책연합이 있다. 특정한 정책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통해 다른 정당과의 정책적 연합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뉴딜 이후 미국 공화당 행정부는 공화당 의원과 남부의 보수적 민주당 의원이 정책적으로 협력한 ‘보수연합’을 통해 여소야대를 사안별로 극복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정책연합은 정책정당이 확립된 경우 상당히 견고하게 전개될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편의에 따른 정당 야합으로 비칠 수 있다.
만약 선거법 개정으로 현재 합의된 준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돼 ‘보다 강한 다당제’가 실현된다면 위에 적은 다양한 대안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일찍이 가보지 못한 정치가 펼쳐질 수도 있다. 선거법 개정은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면밀하게 논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