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개막하는 ‘서울포럼 2019’ 연사로 등장하는 과학 리더들은 기초연구 및 기초과학의 생태계,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 분야의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와 같은 암기식 교육 중심의 중등교육·고등교육 구조에서는 과학영재가 있어도 세계적인 과학자로 육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암기를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 교육 시스템으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은 “(수업시간에) 필기를 잘한 학생들이 학점이 높은 대학의 현실은 심각한 문제”라며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시험기술자’가 성공하는 구조로 필기만 잘하는 학생에게서 창의적 연구가 나오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당장 한국이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한다면 토론 등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교육 시스템에서 사실상 수학·과학영재들을 위한 교육이 전무한 현실도 지적됐다. 염 부의장은 “과학고·특수목적고·영재고에서도 과학영재를 제대로 기를 수 없는 구조”라며 “KAIST·포항공대조차 선진적인 대학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국내 학생 1인당 투자가 미국 대비 5분의1밖에 되지 않는 상황인데다 젊은 연구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연구소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비례적으로 보면 한국보다 미국이나 중국에 과학영재가 더 많을 것”이라며 “한국에 과학영재가 많은 것도 아닌데 교육 시스템까지 젊은 사람들을 제대로 키워주기에 열악하다”고 언급했다.
전문 과학자 육성 못지않게 아마추어 과학문화의 대중화가 꽃피어야 과학강국이 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엘리트 과학자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을 보편화·대중화해 각자의 분야에서 과학지식을 활용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 같은 기반이 갖춰졌을 때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한국의 부족한 기초연구 역량의 배경과 관련해 “연구비 지원과 운영에 대해 젊은 연구자들이 가질 수 있는 결정권이 우리나라에서는 적다”고 분석했다. 또 “연구를 하기 위한 사람 수도 산업체가 가장 많은 반면 대학이 가장 적다”며 인재육성과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토대가 미흡함을 지적했다.
과학 분야에 대한 재정분배 정책을 개혁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국내 과학계에서는 기득권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 교수들에게 정책적 지원이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원은 더 열악해진다는 진단도 곁들여졌다. 염 부의장은 그런 차원에서 “대학원생, 젊은 연구자들, 포닥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초과학과 기초연구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인 스스로도 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목표를 갖고 정진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이어졌다. 한국 과학자들은 선도적 연구보다 해외 연구를 유행처럼 추종하는 경향이 짙어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할 강국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 총장은 “인공지능(AI)의 경우 응용수학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미국 등 서양 과학자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응용수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컴퓨터공학과 밀접하게 연계하기 시작했다”며 “그 결과가 ‘알파고 쇼크’인데 한국은 (응용수학 등의 연구를 등한시하다) 이제야 뒤늦게 AI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들을 비롯한 주요 연사들은 이번 서울포럼에서 한국 과학의 발전방향과 혁신을 위한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 워커힐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14일 사전부대행사인 신남방포럼에 이어 15일 개막한다. /민병권·김지영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