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기(왼쪽부터)·이병기·박준용·이윤남 태평양 변호사가 판교 분사무소에서 회사 업무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박호현기자
“4대 로펌이요? 판교에서는 모두 스타트업입니다.”
정보기술(IT)·바이오 스타트업의 ‘메카’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로펌 스타트업’도 있다. 판교에 갓 발을 들인 신생 로펌 얘기가 아니다. 국내 최대 로펌 중 한곳으로 꼽히는 태평양조차도 판교에서는 도전자의 자세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를 스타트업 로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평양 판교사무소는 지난 11일 설립 1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이 사무소에는 이병기·박준용·민인기 변호사가 상주 근무한다. 모두 파트너급 변호사로 서울에서는 이름이 높지만 판교에서는 스타트업 ‘신인’이다.
일과는 영업사원과 비슷하다. 일명 ‘콜드콜(cold call·일면식이 없는 사이에서 거는 전화)’부터 시작한다. 태평양 서울사무소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가방에는 명함이 한 뭉치씩 들어 있다.
이들은 판교에서 급성장하는 IT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한 법률문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박 변호사는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 상장을 앞둔 회사들은 법규 위반에 따른 위험이 커져 법률자문 수요가 늘어난다”며 “이 밖에 규모가 커지면서 생기는 노동, 독과점 등의 이슈에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거래를 따내는 데 특별한 비법은 없다. 현장을 직접 뛰며 친분을 쌓는 게 유일한 영업 방법이다. 얼굴이 곧 명함인 셈이다. 이 변호사는 “별동대처럼 움직이며 IT·바이오 기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VC) 등 투자 업계까지 관계를 넓히며 법률자문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판교에 가장 먼저 정착한 로펌이지만 상황은 스타트업과 비슷하다. 당장의 수익보다 투자를 해야 한다. 이제 국내 굴지의 IT 기업이 된 카카오도 창업 초기에 태평양 등 일부 로펌과 관계를 맺었다. 이게 인연이 돼 당시 협력한 로펌에 굵직한 자문을 맡기고 있다.
경영과 관련한 자문 시장도 커지고 있다. 초기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영미계 로펌도 페이스북·구글·퀄컴 등의 기업이 창업 당시부터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역할을 했다. 태평양 역시 같은 모델이다.
민 변호사는 “판교 기업들과의 접촉을 늘리다 보니 최근에는 영업비밀, 노동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간 이직이 잦다 보니 관련 영업·기술비밀 침해 문제와 노무 관련 법률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판교 기업이 겪는 일종의 성장통인 셈이다. 오는 7월 시행되는 개정 부정경쟁방지법과 관련해 판교 기업의 법률 문의도 부쩍 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초기 성장 기업을 상대하다 보니 좌충우돌 어려움이 많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대응하며 일종의 ‘로펌 스타트업’만의 노하우를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교=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