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에서 열린 제38회 ‘국가 안녕을 위해 희생한 공직자 추모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DC=AP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정보통신 보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관련 기업들의 제품을 거래제한 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하이테크 분야의 기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화웨이에 대한 사실상의 수출금지를 의미하는 ‘초강수’ 카드를 실제로 꺼내 든 것은 정체된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대중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인 것이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률적 문제를 부를 것”이라고 밝혀 향후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무역전쟁이 날로 격화하는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중국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미 정보통신 기술과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번 비상사태를 계기로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를 포함한 일부 외국 사업자들과 거래하는 것이 금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의 안보 또는 미국민의 보안과 안전에 위험을 제기하는 거래를 금지할 권한을 상무장관에게 위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무부는 다른 부처 및 기관들과 협력해 150일 이내에 시행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상무부는 우선 미국 기업과 거래하려면 당국의 허가를 먼저 취득해야 하는 기업 리스트(Entity List)에 화웨이와 70개 계열사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명단에 오른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미국 기업들과 거래할 수 없다.
이르면 다음주에 발효될 이번 조치로 화웨이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을 수 없게 돼 일부 제품들의 판매가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해질 수 있다. 올 초 화웨이가 이란에 불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로 법무부에 기소됨에 따라 이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상무부 설명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번 조치 후 트위터에 “우리는 미국 정보통신 기술과 서비스가 혁신과 경제 번영의 안전한 기반이 되도록 보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2년 전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ZTE(중싱통신)에 이어 미국이 또 중국 업체를 정조준해 강력한 거래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최근 격화하고 있는 양국 간 무역전쟁이 경제 전반으로 확전될 우려가 더욱 커졌다.
중국 정부는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가 중국 회사에 일방적인 제재를 부과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가오 대변인은 “국가 안보 개념이 보호무역주의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중국은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해 중국 회사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 당사자인 화웨이도 적극 반발하며 회사 권익을 침해하는 미국의 ‘불합리한’ 조치가 ‘심각한 법률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미국 정부의 제재가 최종 시행되면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화웨이의 미국 시장 의존도가 미미한 수준이어서 실제 제재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미국 매출은 2억달러로 전체 매출 1,070억달러의 0.2%에 불과했다. 전 세계에서 일하는 직원 18만명 중 미국에서 일하는 직원도 1,200명 수준에 그친다.
한편 미 의회에서는 공화당 주도로 중국 인민해방군(PLA) 소속 또는 군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군사 분야 과학자들의 미국 비자 취득을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에 대한 외교·경제적 견제가 의회 차원에서도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