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가 성폭행 피해로 임신한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는 초강력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나라 전체가 낙태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이번주 루이지애나주와 미주리주 상원에서도 낙태금지법을 다룰 예정이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이념적 분열은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 법안은 지난 1973년 여성의 낙태선택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겠다는 의도로 마련된 만큼 찬반 논쟁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 소속인 케이 아이비 앨라배마주지사는 15일(현지시간) 전날 상원에서 통과된 낙태금지 법안에 서명했다. 아이비 주지사는 성명에서 “이 법률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임신 중인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성폭행 피해로 임신한 경우나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가진 경우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아 앞서 올해 낙태금지법을 채택한 다른 6개 주와 비교해도 초강력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는 최고 99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아이 낳는 일만 허락된 시녀가 등장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의 복장을 한 시위자가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몽고메리=AP연합뉴스
법안 통과가 알려지자 각계에서는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 앨라배마에서 나왔다”며 “이 법안은 사실상 앨라배마주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여성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는 아이 낳는 일만 허락된 시녀가 등장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스타들도 가세했다. 영화배우 밀라 요보비치는 인스타그램에 “낙태는 안전하고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말고도 여성에게는 감정적으로 충분히 힘든 일”이라며 “나도 2년 전에 긴급 낙태수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대부분의 강간범보다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더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인가”라고 분노했다.
법안의 효력은 6개월 이후에 발생하지만 시민단체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미 연방대법원의 지지를 받아야 할 수 있다. 현재 앨라배마에 앞서 낙태금지법을 채택한 6개 주도 실제 효력이 발생한 곳은 아직 없다.
외신들은 앨라배마의 낙태금지 법안이 미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로 불리는 ‘로 대 웨이드’를 뒤집으려는 목적에서 마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법안을 발의한 테리 콜린스 하원의원(공화·앨라배마)은 “이 법안은 ‘로 대 웨이드’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며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의 재판관이 늘어나면서 낙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법적 싸움을 일으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