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을 거두려면 경제 전반의 파이가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야 한다”면서 “소비시장과 경제 현실 여건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며 오히려 사회 양극화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욱기자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을 거두려면 경제 전반의 파이가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야 한다”면서 “소비시장과 경제 현실 여건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며 오히려 사회 양극화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욱기자
요즘 유통업종의 최대 이슈는 1원 전쟁으로 표현되는 초저가 마케팅 경쟁이다. 초저가 경쟁의 방아쇠를 당긴 곳은 이마트였다. 올 초 ‘국민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상품을 중심으로 최대 50% 할인 행사에 나섰다. 여기에 뒤질세라 롯데마트는 이마트를 비롯해 전자상거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쿠팡보다 저렴한 ‘극한 도전’ 최저가 마케팅으로 맞불을 놓았다. 오프라인의 거센 최저가 경쟁에 최근에는 위메프가 ‘다른 온·오프라인보다 비싼 가격이 있다면 보상해 주겠다’는 초저가 보상제 카드를 꺼내면서 유통시장이 전면전 양상에 돌입했다. 유통업계가 왜 10여년 만에 또다시 초저가 경쟁이라는 제 살 깎아 먹기 식 마케팅 전쟁에 나선 것일까.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회장(동덕여대 교수)은 “국내외 성장률 둔화라는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통업계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시장 전반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그런 시대가 됐다”면서 “당분간 이 같은 극한의 가격 경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한 유통시장의 극단적인 가격 전쟁 이면에는 불투명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도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을 거두려면 경제 전반의 파이가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야 하는데 현재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이 소비시장과 경제 현실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며 사회 양극화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면서 “생산성의 발전과 제품혁신 개발을 북돋아 주지 못한 경제에서 소득주도라는 것은 꿈에 불과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초저가 경쟁에 내몰린 유통업계의 실상을 김 회장과 함께 짚어 보며 유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국내 경제 이슈와 문제점을 진단해보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통업계의 초저가 마케팅 전쟁은 비정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나.
△유통산업은 한 나라의 경제에서 핏줄과 같다.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이 산업 신체의 동맥과 정맥이라면 중소상인과 소매·유통산업은 실핏줄이다. 실핏줄을 통해 혈액과 양분이 정상적으로 돌지 않으면 생명체는 고사한다. 국민 경제의 건강도 마찬가지로 위협받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제품 소비 수요가 유통시장을 통해 구매력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다시 제조업 활성화로 연결되고 추가 투자를 불러오게 된다. 바로 구매주도경제다. 이런 구매주도경제는 실물경제 여건이 나쁠 경우 곧바로 유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유통산업이 어렵다는 것은 거꾸로 국민경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통시장의 극단적인 초저가 마케팅은 현재 경제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의 유통업계 초저가 경쟁은 10여년 전 등장했던 통 큰 치킨 등 출혈 가격 경쟁을 연상하게 한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과거 롯데마트가 통 큰 치킨 행사를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지역 소상공인의 반발 등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때와는 양상이 많이 달라 보인다. 소비자들의 호응이 크고 반면에 지역 소상공인의 반발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현재 초저가 경쟁의 쟁점은 소상공인과의 갈등이 아니다. 유통산업 내부의 새로운 경쟁 구도에 따른 가격 경쟁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국내외 경제 우려와 성장률 둔화라는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유통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져 유통시장 전반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시대가 됐다. 가격 경쟁이 이뤄지는 상품 종류와 기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같은 극한의 가격 경쟁 기본 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통시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최저임금 이슈와 무인화로 인한 업계의 변화 움직임이다. 업계에서는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데.
△무인매장·무인판매대 확산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맞물려 있다. 4차 산업과 기술력의 발전, 빅데이터·인공지능(AI)으로 무인점포의 흐름은 대세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소매 유통시장에서의 무인매장 확산은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가 따뜻한 그런 이상적인 경제를 내세우는 소득주도 성장은 구매력 확대와 제조업 발전, 일자리 확산이라는 선순환 구도를 염두에 뒀는데 실제로는 부작용이 더 많아지고 있다. 소매 유통업체를 콕 집어 생각해보면 따뜻한 경제의 주역이 돼야 할 대상이 오히려 따뜻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시장의 쟁점 이슈의 경우 정부가 업계나 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람과 함께 모여 결정해야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던져 놓고 이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소득주도 경제의 부작용이 오히려 유통시장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는 뜻인가.
△소득주도 경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경제 전반의 파이가 커져야 한다. 소득이 커져야 하고 일자리도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소득주도 경제가 탄력을 받으려면 일자리가 증가할 수 있도록 산업 구조 개선과 연구개발(R&D)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의 효과는 단시일 내에 거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현실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소득주도 성장은 양극화를 더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진정한 소득주도 경제는 활성화된 경제이며 일자리가 넘쳐나고 구매력도 커진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공장도 늘어나고 경제의 선순환도 자연스러워진다. 생산성의 발전과 제품혁신 개발을 북돋아 주지 못한 경제 현실에서 소득주도라는 것은 꿈에 불과한 것이다.
-유통업계의 시장 경쟁 구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분위기다. 신흥 e커머스 업체 쿠팡의 공격적인 경영이 온·오프라인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양상인데.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의 경쟁 구도는 G마켓·옥션·11번가·인터파크 등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열려 있는 ‘오픈마켓’과 쿠팡·위메프·티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매개로 이뤄지는 전자상거래를 가리키는 ‘소셜커머스’ 두 형태가 주력 기둥이 되고 있다. 최근 쿠팡의 두각으로 업계 판도가 흔들리고 있는데 쿠팡의 공격 경영과 적자 부담, 인력 이탈 움직임은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쿠팡은 사업 초기 고객의 편의를 위한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있다. 쿠팡이 로켓 배송뿐 아니라 새벽 배송에 뛰어들며 공격적으로 마케팅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문제는 지난해 65%의 매출 성장에도 적자가 77%나 늘었고 수익 모델도 아직은 뚜렷한 것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마켓컬리와 같이 새벽 배송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스타트업의 견제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고객 유치와 시장 점유율 확대 같은 아마존 식 성장전략을 따르겠다는 것인데 일단 고객 편의를 위해 기술과 인프라 투자에 나서려는 이런 기업들의 철학과 성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줘야 할 것이다.
-e커머스의 이 같은 빠른 성장이 기존 전통 유통업체에는 큰 도전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큰데.
△물론이다. 현재 e커머스의 거래액 규모는 지난해 111조8,939억원으로 2001년 3조3,470억원 대비 33배 성장했다. 향후 5년 내 소매업에서 e커머스가 50%의 비중을 점유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e커머스의 발전으로 기존 백화점은 다소 부정적, 대형마트는 큰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대형마트의 경우 신선식품 등 전문 온라인몰 침투 속도 증가에 따라 매장 방문 고객 감소가 불가피하다. 결국 신제품 개발과 배송 경쟁력 강화 등의 차별적 대응방안만이 향후 살아남는 전략이 될 것이다.
-유통업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노조와 사측 입장이 팽팽히 대립되면서 대화와 협상의 노력은 희석되고 있는데.
△국가 경제는 물론 기업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엇이 우선인지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상승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조의 입장을 수용한다면 임금 상승분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성 혁신도 그만큼 이뤄져야 한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나 기업이 망하면 노조도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기업도 노조를 위한 선제 정책 조건을 내걸고 이를 실제 수행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경영에 대한 기업가의 철학이 다른 만큼 노사 분쟁에 대한 상황별 표준 해결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제시하고 이를 법제화해 합리적인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고통을 함께 분담하지 않으면 분쟁은 끝이 없다. 세계 최고의 노조가 있는 독일도 노사 타협은 상호 고통 분담에서 출발한다. 독일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의 경우 회사는 연장근로 수당을 주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자는 고용안정을 얻는 대가로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감소를 받아들여 위기를 넘기고 정상 경영 상태로 복귀할 수 있었다.
-노사 문제 가운데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파장이 최대 이슈다. 어떤 해결책이 가능하다고 보나.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경쟁 상태에 있는 한국 기업은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을 통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절실하다. 최저임금 정책의 필요성과 최저임금 도입을 통해 소득격차를 줄이겠다는 생각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도입시기 조절과 산업별 대응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소득을 높일 것으로 생각했던 정책이 소상공인의 사업을 어렵게 하는 정책으로 가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며 심지어 학생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노동법규는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만큼 부작용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2년간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을 동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쪽으로 최저임금제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따뜻한 경제를 위해서는 이익이 있는 곳에서 얻어진 세수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복지 인프라를 강화해 소득 수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노사가 갈등하고 반목한다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다. 융합의 시대에 갈등의 한국 사회를 발전으로 이끌려면 타협과 양보 협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성장률이 1%대로 둔화될 것을 우려하는 불황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사 협력은 미래 지속 가능한 한국 경제의 전제 조건이다./ hbm@sedaily.com
He is…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동덕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규제위원과 갈등관리심의위원장, 동반위원회 유통산업자문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유통학회 부회장을 거쳐 올 초 한국유통학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1994년 창립한 한국유통학회는 정기 학술대회와 각종 포럼, 학술지 ‘유통연구’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BMW코리아는 유럽 대형 유통기업과 제조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 사례에서 새로운 협력방안을 시사한 논문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2018 BMW 학술상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