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조웅 국민레미콘 회장.
“지금처럼 대내외 여건이 힘들 때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한마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힘이 됩니다.”
배조웅(76·사진) 국민레미콘 회장은 20일 서울 삼성동의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중소기업계가 대단히 어려운데 이들이 힘과 용기를 내 요즘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업과 기업가들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그 어떤 정책 수단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배 회장의 말이다.
중소기업을 일군 사람 치고 어려운 시절을 안 겪은 사람이 없겠지만 배 회장은 ‘용기’ 하나만 가지고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람이다. 회사의 성공에서 그치지 않고 업계 발전을 위해서도 애썼다.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냈고 올해 2월에는 제10대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에 당선돼 업계에 봉사하고 있다. 2011~2014년, 2016년부터 현재까지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지내며 중소기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제도적 장치보다도 중소기업인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격려 한마디를 건네는 사회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중소기업 창업가 대부분이 만만치 않은 인생 역경을 거친 사람들이지만 배 회장은 그중에서도 더욱 남다른 인생 스토리를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시작해 연 매출 170억원 회사의 회장이자 레미콘 업계의 수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까지 오르기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저도 월급쟁이였어요. 동국대를 졸업하고 1968년에 롯데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어요. 식품공장의 자재 창고에 처음 배치받아 일하다가 나중에는 과자와 껌 영업을 하게 됐는데 그때 영업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배 회장은 당시 방산시장과 남대문시장에 있던 과자 도매상을 상대로 과자와 껌 영업을 했다. 그때 사원 직급이던 배 회장은 회사에서 주는 교통비를 아껴 50㏄ 오토바이를 할부로 샀다. “여기저기 다니는 일이라 하루의 동선이 상당히 긴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남는 시간에 더 열심히 영업했고 상당한 성과를 냈습니다.”
배 회장은 과자 도매상 진열대에 롯데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좋은 자리에 놓이게 하는 아이디어도 냈다. 바로 영화표였다. 회사에서 나오는 영업비를 접대에 쓰는 것보다 영화표를 사서 과자 도매상 여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효과가 클 것이라 판단했다. 배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어느새 경쟁사 영업사원이 쫓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배 회장의 ‘사교춤’ 얘기도 재미있다. “방산시장 근처에 ‘야광캬바레’라는 곳이 있었는데 과자 도매상 사장 중에 춤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롯데 영업사원들에게 우리도 춤을 좀 배워 사장들과 더 확실하게 친해지자고 제안했죠. 마침 시장 근처 여관에 춤 선생이 있어 댄스를 배웠는데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쳐 모두 잡혀갔습니다.”
배조웅 국민레미콘 회장.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춤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자체가 ‘무허가 댄스 교습’이었던 것. “영업을 위해 춤을 배웠다”고 사정을 얘기하니 경찰은 입건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 측에 적발 사실을 통보했다. 배 회장은 사교춤 배우기를 주도한 입장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 사표를 냈다.
“집에서 며칠을 쉬고 있는데 회사에서 다시 나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지금 푸르밀 회장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막냇동생 신준호씨가 당시 상무였어요. 그가 사정 얘기를 듣고는 ‘영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사표를 수리하면 되겠느냐’는 의견을 냈다고 해요. 덕분에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 회장은 몇 년 뒤 롯데에 사표를 낸다. 7년을 다녔고 직급은 계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롯데가 국내에 대형 투자를 하지 않았던 때여서 배 회장은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롯데가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옮긴 곳이 쌍용그룹이었다. 그는 쌍용에서 당시 쌍용그룹 산하 국민대 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국민대 재단에서 근무를 하기도 하고 쌍용양회 내에 있는 ‘국민학원사업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당시 쌍용그룹은 국민대를 키우기 위해 재단에 투자를 많이 했다. 국민대 재단도 학교에 투입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쌍용양회의 지원을 받아 시멘트와 레미콘 영업을 하기도 했는데 배 회장은 주로 그 일을 했다. 1995년에는 이사 직급으로 국민대 산하 국민레미콘의 월급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쌍용그룹 전체가 흔들렸고 길거리에는 실업자가 막 쏟아져 나왔어요. 대기업 전체에 명퇴 바람이 대대적으로 불었는데 저 스스로도 회사에 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국민대 재단은 수익 사업으로 파주와 용인에 레미콘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쌍용그룹은 그 공장 매각에 나섰어요. 그래서 제가 종업원지주제로 용인 공장을 인수하겠다고 했고 쌍용그룹이 승인을 했습니다.”
대기업 임원 출신 명퇴자가 될 뻔했던 배 회장의 운명은 그때 갈렸다. 집 담보로 대출을 받고도 모자라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국민레미콘 오너 경영자가 됐다. 중소기업인이 된 것이다.
“시멘트와 레미콘 영업은 해봤지만 공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배워야 할 것이 많으니까 집에 갈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야전침대를 사서 공장 사무실에 놓고 6개월을 회사에서 먹고 자고를 했어요. 경리부터 생산·영업까지 모든 것을 다 했더니 일에 대해 알게 되고 회사도 차츰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배 회장의 ‘영업인 기질’은 레미콘 회사 사장이 되고 나서도 그대로였다. “새벽에 납품처인 공사현장에 가서 현장 관계자들과 같이 드럼통 장작불을 쬡니다. 그럼 공사현장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어요. 국민레미콘에서 나왔다고 하면 아직 첫 레미콘 차가 올 시간이 아닌데 누구냐고 해요. 그러면 그때 ‘배차관리 직원’이라고 하면서 음료수 하나씩을 돌려요. 그러면서 공사현장 사람들과 친해졌어요.”
배조웅 국민레미콘 회장
그렇게 시작한 배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운 무기는 신뢰와 품질이다. 대기업에서 배운 경영기법을 도입해 품질관리를 엄격히 하고 단기 이익보다는 거래처에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단골이 생기고 회사가 발전했다. 처음 인수했을 때 연 매출이 30억원선이었는데 이제는 170억원 매출을 올린다.
이런 배 회장의 성공 스토리가 업계에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조합 일을 해보라는 권유가 잦아졌다. 그렇게 해서 2004년 서울경인레미콘협동조합 이사장에 선출됐고 올해는 레미콘조합연합회장까지 됐다. 아울러 중기중앙회 부회장으로서 업계에 도움이 되는 목소리도 많이 내고 있다.
“전국에 레미콘 공장이 1,010개이고 이들의 연 매출이 8조~9조원 정도입니다. 레미콘 차량 기사들을 포함하면 고용 인원이 10만명입니다. 레미콘 사업이 잘돼야 이들 모두가 안정된 삶을 영위해갈 텐데 건설경기 침체로 업계가 너무 어려워요.”
배 회장은 레미콘 업계가 매출 규모가 아닌 품질과 이익 위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 레미콘은 원료인 시멘트와 골재업계, 수요자인 건설사 사이에 낀 존재다. 건설경기 하락기에는 매출 늘리기에 집중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제값을 받아 이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게 배 회장의 해법이다.
그는 “품질이 좋아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도 건설사를 설득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면서 “품질에 레미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단언했다. 이런 차원에서 배 회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전국 레미콘업체 직원 650여명을 모아 레미콘조합연합회 주최로 ‘레미콘 품질관리 책임자 교육’을 벌이기도 했다.
배 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으로서 중소기업계에 대한 자신의 신념도 더 자주 피력할 생각이다. 특히 규제개혁,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화,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완화 등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는 “규제개혁은 일자리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앙이든 지방이든 공직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면서 “350만 중소기업이라고들 하는데 불필요한 규제가 풀리면 중소기업 채용이 반드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계가 내국인 구인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숙식을 제공해 가며 외국인을 고용하는데 같은 최저임금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중소기업 생존의 관건이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완화에 있다고 본다. “인재들이 대기업만 선호하는데 중소기업이 어떻게 발전을 하겠습니까.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정책적 수단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중기중앙회 부회장으로서 조그만 역할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배 회장은 국민레미콘 임금도 대기업의 80%대를 유지하도록 경영해왔다고 소개했다.
배 회장은 자신의 사업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방안도 실행해나갈 방침이다. 다른 공장을 인수해 레미콘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건축물 폐기장과 물류창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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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경남 김해 △1968년 동국대 불어불문 △1968년 롯데그룹 입사 △1998년 국민레미콘 인수 △2004~2019년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 △2011~2014년,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제10대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