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확대 거론하자마자 법인세 강화 추진이라니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자마자 여당에서 증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운열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이 20일 한 인터뷰에서 “법인세율 체계를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원상 회복하는 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현재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은 기업소득 200억원 초과에 22%, 3,000억원 초과에 25%를 적용하는데 25% 세율 구간을 500억원 초과로 낮춰 과세 대상 기업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정조위원장은 소득세와 관련해서도 “고소득자의 세율을 높여 누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과 고소득자 위주로 세금을 높여 재정확대의 돈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대기업·부자와 중소기업·서민의 대결구도를 염두에 둔 총선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진의가 어떻든 정부 여당이 경영여건 개선에 앞장서기보다 기업을 쥐어짤 궁리만 하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의 법인세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8%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곱번째로 높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법인세를 전년보다 7조5,000억원이나 더 걷었는데 이는 기업 이익증가분의 절반 이상이다. 감세를 통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경쟁국과는 딴판이다. 최근 5년간 법인세율을 내린 국가는 미국·일본·영국 등 14개국에 이른다.

중국도 경기하강에 대비해 기업 감세혜택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스위스는 국민투표까지 실시해 독일 등 주변 유럽연합(EU)국들의 법인세율 인상 압박을 막아냈다. 법인세를 올리면 국가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 부담이 가중되면 기업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고 결국 일자리 창출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불황으로 이익이 쪼그라들 때는 더 그렇다. 정부 여당은 세계 각국이 왜 감세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비하면서 나라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정공법은 기업 등 민간의 기를 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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