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커지면서 함께 주목받는 곳이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성(海南省)이다.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행정구역상 남중국해는 하이난성에 속한다. 중국이 하이난 개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는 주요한 이유다.
중국 정부는 하이난성을 자유무역시험구·자유무역항으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하이난의 자유무역시험구·자유무역항 실험이 안착할 경우 이는 중국도 자유무역을 한다는 명분을 안겨주는 동시에 남중국해의 패권까지 장악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최대 관심사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해상 부문 확장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듯하다.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듯 하이난성에서는 끊임없이 굵직한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3월 하이난성 정부는 오는 2030년부터 하이난성 내에서 휘발유·경유 등과 같은 화석연료 차량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를 사용한 차량만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지역에서 화석연료 차량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세계 최초 사례로 실제 시행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월에는 하이난의 남쪽 싼야에서 전 세계 언론인들을 불러모은 ‘2019년 글로벌 자유무역 미디어포럼’이 개최됐다. 하이난을 자유무역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행사는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4월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하이난을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지 1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이어 5월12일에는 하이난 국가생태문명시험구 시행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중국 최남단의 섬이기는 하지만 서양이나 동남아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통로라는 지정학적 이유로 하이난 개발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이난은 이미 중국 개혁개방 초기에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선전과 샤먼·주하이·산터우 등 4곳에 이어 1988년에 지정된 5번째 중국의 경제특구다. 이곳이 경제특구가 된 것은 화교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척박한 하이난섬은 과거부터 해외로 이주한 화교들이 많았는데 중국 정부는 이들 화교가 개혁개방 초기에 고향에 재투자하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쉽게도 실패였다. 노동력이나 제조기반시설, 자원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선전 등 인근 내륙 경제특구에 밀린 것이다. 다만 천혜의 자연은 여전히 하이난을 중국에서 가장 좋은 휴양지로 만들면서 이후 관광객들을 끌어모았다.
최근 상황을 바꾼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4월10일 하이난섬 중부의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아시아포럼’에서 하이난섬 전체를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하이난은 중국에서 12번째 자유무역시험구이자 첫 번째 자유무역항으로 공식 지정됐다.
중국 자유무역시험구는 2013년 상하이에서 시작됐다. 어떤 특정한 지역을 정해 생산과 투자, 물류, 서비스의 ‘자유화’ 정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중국이 폐쇄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을 한꺼번에 자유화할 수 없으니 일단 성공사례를 만들어 이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다만 상하이를 비롯해 기존 11군데의 자유무역시험구는 일부 제한된 지역에서만 제도가 시행돼 본격적인 경제개혁실험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상하이는 양산보세항구·루자주이금융무역구 등 7개 지역 120㎢를, 푸젠성의 경우 핑탄·샤먼·푸저우 등 3개 지역 118㎢를 각각 자유무역시험구로 정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하이난 싼야국제면세점의 모습. ‘자유무역항’ 하이난은 관광에서 시작해 IT 등 분야로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큰 사진) ‘7성급’ 하이난 아틀란티스 리조트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다.(작은 사진) /하이난=최수문특파원
반면 지난해 하이난은 섬 전체가 하나의 자유무역시험구로 묶였다. 보다 확장된 지역에서 실험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유기업 등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경제개혁이 저항을 받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하이난이 바다로 격리된 섬이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11곳이 있는 자유무역시험구보다는 새롭게 도입된 자유무역항으로서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자유무역항이 무엇인지 아직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이웃 홍콩과 같은 인력·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고 무관세인 지역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기존 자유무역시험구보다 더 개방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시 주석이 ‘중국 특색’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바 있어 향후 진행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천강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하이난은 지리적 입지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유사하다”며 “자유무역항의 개발 정도에 따라 태평양과 중국, 유럽을 잇는 노선, 또는 동북아·동남아 연결 노선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자유무역항 선포 이후 하이난에는 해외로부터의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하이난에 신설된 외국자본 기업은 167개로 2017년보다 92%나 증가했다. 올해 1·4분기에만 82개가 더 생겼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4.5배에 달한다. 지난해 실제 투자된 외자 규모는 7억3,300만달러(약 8,740억원)로 112% 늘었고 올해 1·4분기에는 6,761만달러로 무려 51배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하이난이 중국 최초의 블록체인 실험 특구 및 선행구로 지정되면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쇄도했다. 지난해 하이난에 신설된 IT·첨단기술 기업은 381개로 46% 증가했다. 관련 산업생산은 1,000억위안(약 1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금까지 하이난의 최대 장점이었던 관광 분야에서도 규제가 풀리고 있다. 하이난은 지난해 12월부터 면세한도를 기존의 두 배 수준인 3만위안으로 높였다. 또 한국 등 59개국 국민이 무비자로 최대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면세구역 4만5,000㎡로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싼야국제면세점(CDF몰)은 2014년 문을 연 후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섬 전체가 남국의 기후이기 때문에 리조트를 비롯한 휴양지로서는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중국 정부도 핵심 관료를 파견하는 등 30년 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2017년 5월부터 하이난성 성장으로 있는 선샤오밍은 상하이 푸둥신구 건설을 주도한 자유무역 관련 행정의 전문가다. 의사 출신 관료인 그는 상하이 제2의과대학 총장과 부속병원 원장을 거쳐 2008년 상하이시 부시장이 됐으며 2015년부터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관리위원회 주임으로 푸둥신구도 맡았다.
다만 하이난이 가진 태생적 한계도 적지 않다. 우선 하이난은 인력, 특히 양질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섬의 면적은 3만5,400㎢로 한국의 경상도보다 10% 정도 큰 반면 인구는 926만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돼온 터라 경영난에 시달리는 하이난항공그룹(HNA)을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지역 기업도 없다. 반면 중국 전반의 부동산 붐에 더해 휴양지 주택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하이난까지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황재원 KOTRA 광저우무역관장은 “비용 부담이 큰 홍콩이나 규제 장벽이 높은 중국 내륙 대신 하이난에 법인을 설립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자유무역항의 개방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높일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 경제의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도 하이난 개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에게도 남중국해는 남쪽 아주 먼 지방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까지 이곳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중국인을 만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하이난이 개발되고 관심이 집중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하이난 개발은 남중국해 제패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보아오포럼에서 하이난을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으로 선언한 지 겨우 이틀 후인 4월12월 군복차림으로 하이난 남쪽 남중국해에 섰다. 그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에 올라 해상열병식을 사열했다. 시 주석은 당시 함상 연설을 통해 “강대한 해군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하이난이 경제개혁과 성장의 실험장이자 남중국해 제패를 위한 교두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