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이스라엘, 아돌프 아이히만 압송

'무사유로 인한 보편적 악'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사진)을 체포해 이스라엘로 압송했습니다.’ 지난 1960년 5월23일,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의 짤막한 발표가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 친위대 소속 중령이던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 총책임자. 패전 후 전범수용소를 탈출한 뒤 신분을 세탁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1960년 5월11일 아이히만을 납치해 아르헨티나 혁명기념일 축하사절단을 싣고 온 이스라엘 국영 항공기편으로 그를 빼돌렸다.


아르헨티나는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가짜 신분이라도 자국민을 납치한 불법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아르헨티나의 반발은 이스라엘의 사과로 마무리됐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아이히만은 26세(1932년)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가입하며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친위대 훈련소를 나와 중사로 시작한 그는 1937년 장교로 승진하며 유대인 강제 추방과 수용·학살에 핵심 역할을 맡았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총책 하인리히 뮐러가 “우리에게 50명의 아이히만이 있었다면 유대인을 절멸하고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극적으로 체포돼 이스라엘로 압송된 그는 열다섯 가지 죄목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스라엘의 관할권, 납치에 따른 국제법 위반, 공소시효 문제 등 수많은 법률적 쟁점도 논란을 불렀다. 낭독하는 데만 사흘이 걸린 최종 판결은 사형. 1962년 5월31일 한밤중에 처형된 아이히만의 시신은 화장돼 지중해에 뿌려졌다. 이스라엘은 오늘날까지도 나치 전범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한다. 최근에는 95세 미국 시민의 나치 전력과 신분 세탁이 발각돼 강제 추방된 적도 있다. ‘역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인식은 작지만 강하고 풍요로운 이스라엘을 낳았다.

아이히만 재판은 또 한 명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유대계 독일인 출신의 여류 정치학자로 미국에서 명망을 쌓아가던 해나 아렌트가 주인공. 미국 뉴요커지 특파원 자격으로 세기의 재판을 취재한 그는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라는 데 놀랐다.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성실한 남편이던 그가 인간에 대해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것을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자신의 머리로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않는 무사유에서 ‘악의 보편성’이 탄생했다고 한 아렌트는 세계적 학자로 거듭났다. ‘무사유와 보편적 악.’ 우리에게는 없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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