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_레터] 치열한 '연습생 입시' 세계…"14살은 늦었어요"

프로듀스 X 101 시즌4 방송 시작하며 '연습생' 다시 주목
기획사 2,733곳, 연습생 1,079명…가수 데뷔까지 험난
'13살도 데뷔하는데' 불안감에 수십만원 학원 전전
오디션 통과돼도 '트레이닝' 받기까지 끝없는 경쟁속
당국, 청소년 연습생·연예인 위한 표준계약서 마련중

아이돌을 꿈꾸며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되기 위해 오늘도 오디션에 참가하는 꿈나무들. 사진은 신인 걸그룹을 준비 중인 한 기획사의 공개 오디션 현장. / ‘쏘스뮤직’ SNS 캡처

“나는 그럴 수 없어, 네게 빠질 수 없어, 내게 사랑 계획 impossible (중략) 흐르는 땀 floor 위를 적시면 스며드는 동안 비친 거울 속의 난 어느새 꿈에 가까워진 것 같아.” 가수 윤종신이 2015년 ‘월간 윤종신 11월호’에서 발표한 곡 ‘연습생’ 가사 일부입니다. 대중 앞에 서는 날을 위해 사랑보다 꿈을 선택한 가수 연습생들의 마음을 담은 곡이죠.

연습생들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이돌 육성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이 지난 3일부터 Mnet(엠넷)에서 방영되며 화제를 이어가고 있거든요.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들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 세 번의 시즌 동안 아이오아이(2016년)·워너원(2017)·아이즈원(2018)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기 덕분인지 캐나다·프랑스·호주·대만·태국·중국·일본 등 10명의 외국인 연습생들도 대거 출연해 관심을 모았죠.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은 지금도 ‘연습생’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겁니다. 때로는 월 50만~60만 원에 달하는 학원 수강료를 지불하기도 하죠. 누군가는 가수의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두고 ‘연습생 입시’, ‘가수 취업 준비’라며 피 말리는 대학 입시·취업 전쟁의 현실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번 ‘썸_레터’에서는 ‘입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연습생들의 세계에 주목했습니다.

프로듀스 X 101에 출연중인 기획사 연습생들 / 엠넷 홈페이지 캡처

■ “아이돌 연습생 모집”…기획사들은 지금도 ‘오디션’ 중
‘2019 하반기 공중파 데뷔 예정 걸그룹 오디션 개최’, ‘일본 진출 보이그룹 멤버 모집’…

회원수 11만여 명으로 가장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모인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23일 접속했습니다. 지난 1주일간 80여 건의 기획사 오디션 정보가 꾸준히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곳부터 홈페이지 접속조차 안 되는 곳까지 다양했습니다. ‘틱톡(Tik-Tok)’이라는 최신 유행 앱을 이용한 ‘단 15초짜리’ 오디션도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전국 각지의 보컬, 댄스 학원에서 진행되는 ‘내방오디션’도 수시로 열립니다. 유명 기획사의 캐스팅 담당자가 학원을 찾아 오디션을 진행하는 형태인데요. 학원 수강생들만 응시할 수 있는 비공개 오디션입니다. 다수의 학원들이 유명 기획사 간판과 단독 오디션 기회를 홍보하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일명 ‘OO기획사 신인개발팀’의 눈에 띄는 것도 지망생들의 주요 미션 중 하나입니다. 각 신인개발팀들은 어제는 서울의 한 중학교 앞에서, 그저께는 지방의 한 댄스경연대회에서 신인 발굴을 위해 길거리 캐스팅을 진행했습니다. S기획사 신인개발팀 과장은 기자의 물음에 “하루에 한 명이라도 발굴하면 잘 된 상황으로 보면 된다”며 “이들에게는 회사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길거리 캐스팅에서부터 공개·비공개 오디션 그리고 앱을 이용한 온라인 오디션까지, 가수 지망생들을 위한 다양한 오디션 기회가 열려있는 듯 하지만 결국 꿈꾸던 ‘연습생’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사 오디션 최종 합격’이라는 큰 관문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 “14살인데 이미 늦은 거 같아요” 어린 가수 지망생의 걱정

지난 주말(18일) 신인 걸그룹을 준비 중인 S기획사의 공개 오디션에 응시한 만 14살 중학생 민지(가명) 양은 “요즘 오디션 현장엔 초등학생들도 많고 13살에 이미 데뷔한 분들도 있어 아무래도 나이나 외모 면에서 많이 조급해지는 것 같다”고 불안해했습니다. 나이 때문에 벌써 가수의 꿈을 포기한 친구들도 있다는데요.

걸그룹 아이즈원의 센터 장원영(앞쪽 가운데)은 만 13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현재 오디션을 진행 중인 각 기획사들의 지원 자격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만 19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이 불문’인 곳도 많죠. 그러나 지원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기획사에서 선호하는 것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생으로 발탁돼 5~6년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 스타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미디어에 등장합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나이 어린 친구들이 어른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에 감탄하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수시로 등장하죠. S기획사의 오디션을 봤던 민지 양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민지 양처럼 불안해하는 심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각종 오디션 아카데미들도 범람하고 있습니다. 보컬·실용음악학원은 전국에 4,000여 곳, 댄스학원은 2,500여 곳 정도 개설돼 있죠. 많은 곳에서 ‘오디션 대비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지 양도 아카데미를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일주일 세 번 오디션 대비·보컬·댄스를 번갈아 배우는 식인데 수강료가 한 달 50만~60만 원에 달했다네요. 부담스러워 결국 그만뒀지만 불안한 마음은 더 커진 듯 보였습니다.

여러 기획사를 거치며 현재 개인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이진우(45) 씨는 “방송에서 10대 위주로만 주목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친구들만 데뷔한다는 것은 미디어가 만든 일종의 착각”이라며 “따져보면 나이 어린 친구는 그룹에 한두 명 뿐이고 대다수는 10대 후반에 20대 이상 나이의 친구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데뷔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각 기획사별 연습생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간한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보고서(2017)’에 따르면 전체 가수 연습생 1,079명 중에서 ▲만 12세 미만 14명 ▲만 13세~만 15세 103명 ▲만 16세~만 18세 460명 ▲만 19세 이상 502명으로, 성인 연습생이 46.5%에 달했습니다.

한 오디션 아카데미 홈페이지. 실력의 향상 뿐 아니라 뮤지션으로의 자세와 인성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오디션합격-예비연습생-소속사 연습생-데뷔조…수많은 관문 통과해야

오디션에 합격한다고 해서 다 같은 ‘연습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오디션 합격자들은 일단 기획사 연습실에서 ‘연습’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보컬·댄스 선생님을 통한 ‘트레이닝’ 과정은 없습니다. 아직 계약서도 쓰지 않은 일종의 ‘예비 연습생(견습생)’ 신분입니다.

그러나 매월마다 성취도 평가를 통해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이들에게는 ‘연습생 계약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비로소 ‘소속사 연습생’이 된 이들은 보컬·댄스·악기·연기·외국어 등 전문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이 기획사에 돈을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연습생이 데뷔했을 경우 ‘정산’을 통해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돈을 받는 기획사가 있다면? 이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연습생 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연습생들의 계약 기간은 평균 3년 2개월 정도이며 소속사는 연습생에게 1인당 월평균 118.2만 원을 지출한다고 합니다. 만약 계약기간 동안 연습생 귀책사유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면? 해당 연습생은 투자비용의 2~3배 가량 되는 위약금과 투자 손실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더해 총 투자금액의 4배 가량을 배상해야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조항은 기획사의 손해를 감안할 때 과도하지 않고 적절한 내용임을 안내하고 있죠.

연습생들은 거기서 또다시 신인그룹 멤버로 선발돼 ‘전속계약서’를 작성해야 비로소 ‘데뷔 조’가 되고 데뷔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결국 오디션 합격 이후에도 수많은 관문이 계속 이어지는 셈이죠.

■ ‘이 기획사 어떻게 믿지...?’ 연습생 되고 후회하지 않는 방법

기획사를 선택해야 할 땐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까요? 이진우 보컬 트레이너는 두 가지 기준을 강조했습니다. 첫 번째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체로 등록된 곳인가, 두 번째는 그 회사 소속 가수 및 연예인이 믿을 만 한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중문화예술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인터넷으로 손쉽게 연예기획사 등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습니다. 5월 현재 대중문화예술기획업체로 등록된 곳은 모두 2,733곳입니다. 이들은 대중문화예술산업법에 따라 법정교육 참석, 거짓광고 금지, 성행위 알선 및 유인 금지, 45일 이내 보수 지급 등 준수사항을 지키도록 돼 있으며 미준수 시 영업정지, 등록취소, 과태료, 형사처벌 등을 받습니다.

오디션 때마다 수천-수만 명이 몰리지만 ‘합격’을 얻는 이는 극히 적다. / ‘쏘스뮤직’ SNS 캡처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수많은 기획사 중 261곳 만이 연습생을 두고 있습니다. 이진우 트레이너는 “연습생을 두려면 건물이나 연습실 등 연습할 공간을 마련하고 유지해야 해 비용이 발생한다”며 “소속 연예인이 활동해야 수익이 발생하고 이를 연습생 등에게 투자할 수 있는 구조여서, 소속 연예인이 변변치 않거나 연습생이 없는 회사는 한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계약서 내용도 잘 뜯어봐야 합니다. 가수 등 연예계에서는 계약서 분쟁과 그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죠. 걸그룹으로 데뷔했는데 4년간 행사장만 전전하다 정산을 1원도 받지 못하고, 탈퇴하려 했더니 계약기간이 ‘종신 상태’여서 문제가 됐던 사례가 최근 알려진 바 있습니다. 또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해 데뷔했던 가수 강다니엘도 소속사 L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서 내용 관련 법적 분쟁을 겪은 끝에 지난 10일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으로 겨우 활동 재개를 알린 바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대중문화예술인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표준전속계약서를 제정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의뢰로 청소년 연예인 및 연습생들의 표준계약서 마련을 위한 연구도 진행된 바 있습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연습생 교육비용은 무상이며, 금품을 요구할 수 없다’, ‘연습생의 발전 가능성이 낮은 경우 연습생은 손해배상 없이 계약해지 가능’, ‘연습생의 계약기간은 최장 3년으로 정함’ 등의 연습생 표준계약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연습생들은 이 같은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고 향후 생길 수 있는 불이익 등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소중한 꿈에 상처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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