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왼쪽) 바른미래당 의원과 손학규 대표. /연합뉴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 이어 하태경 의원도 ‘정치권 금도’를 언급하면서 ‘금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손 대표와 하 의원이 쓴 ‘금도(禁度)’는 지켜야 할 선이나 넘지 말아야 할 수준을 뜻하지만,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지난 22일 손 대표가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주요 당직 임명 철회 안건 등을 상정하지 않자 하 의원은 손 대표 면전에서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고 공격했다. 손 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소한의 금도가 살아 있는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하 의원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손 의원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손 대표의 당 운영 문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점을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면서 “정치권의 금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더욱 정진하겠다”고 전했다.
손 대표와 하 의원이 언급한 ‘정치적 금도’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등재된 ‘금도’의 뜻은 다섯 가지다. ‘복숭아의 한 종류’를 의미하는 금도(金桃), ‘돈줄’을 뜻하는 금도(金途), ‘거문고에 대한 이론과 연주법을 통틀어 이르는 금도(琴道), 그리고 도둑질하는 것을 금한다는 뜻의 금도(禁盜)가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의미의 금도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 역시 두 의원의 발언에 대입했을 때 완벽하게 어우러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금도‘라는 단어 선택이 손 대표의 순간적인 말 실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지난 3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정치적 금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도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의 탈당과 함께 자유한국당 행이 거론되자 손 대표는 김병준 당시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정치적 금도를 지키려면 과거식의 의원 빼가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경고했다.
손 대표 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금도’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제1야당 대표로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역임한 분이 대통령께 금도를 지키지 못하고 막말과 험담을 쏟아낸다”며 질책했다. 앞서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황 대표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방송기자 출신인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 대표의 오만과 독선이 정치적 금도를 넘었다”며 논평을 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캡처
일반인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는 “사전에 없는 ‘금도’를 사전에 올릴 수는 없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그는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사회에서 쓰이는 ‘금도’는 국어사전에서 찾을 있는 뜻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 측은 문의자에게 “누구나 사전 집필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사전 ‘우리말 샘’에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어 어휘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말 샘에는 ‘남친’(남자 친구),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 대중들이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등록돼있다. 우리말 샘에 등재됐다고 표준어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23일 현재 ‘금도(禁度)’는 우리말 샘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미경기자 seoul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