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는 2017년 노사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킨 뒤 강도 높은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3공장 생산라인이 파업으로 멈춰 서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미국 자동차 1위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2위인 포드도 인력 감축에 나섰다. 포드는 올해 8월까지 전체 사무직의 10%인 7,000명을 줄일 예정이다. 앞서 GM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 투자를 위해 1만4,000명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유럽 1위인 폭스바겐도 미래차 투자를 위해 5년간 7,000명을 감원한다. 반면 현대차(005380)는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생산으로 7,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감원 계획을 공론화하지도 못하고 있다. 거꾸로 노조는 오는 2025년까지 정년퇴직자 대체인력 1만명을 정규직으로 충원해달라고 요구한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변하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미래차 투자에 서둘러 뛰어들고 있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는 여전히 강성노조의 억지 주장에 발목이 잡혀 있다.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차를 ‘재앙이나 악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부를 과감히 폐쇄하고 미래차 개발 경쟁을 위해 연구개발(R&D) 인력과 설비 투자를 해야 하지만 노조의 어깃장에 한발 앞으로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제 살 깎아 먹는 노조의 어깃장=현대차와 기아차(000270)·르노삼성·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미래차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아직도 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감행하는 노조부터 달래야 한다. 특히 생산 라인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동의가 절대적이다. 지난해 말 현대차가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는 폭발적인 인기로 고객들의 대기기간이 8개월까지 늘었다. 지난 1월 구자용 현대차 기업설명담당 전무가 “고객 대기기간을 줄이기 위해 생산 증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4월에야 생산 라인 증산에 겨우 합의했다.
현대차가 노조의 반대로 시장 상황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은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내연기관 차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만큼 전기차나 수소차와 같은 미래차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터지만 노사 간의 대립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쉽지 않다. 미래차 투자의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는 노조도 인지하고 있다. 윤선희 현대차 노조 팀장은 한 토론회에서 “현대차의 내연기관 차 생산량이 2020년 148만대에서 2030년 30만대까지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울산의 2개 생산 라인을 전기차 전용 라인으로 전환할 계획이지만 노조가 쉽게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현대차의 베이징 2·3공장을 친환경 전기차 라인 중심으로 바꿔야 벌금 폭탄을 피할 수 있으나 이것도 국내 노조와 조율을 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노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래차 개발에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미래차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완성차에 접목하기에는 늦었다는 판단 아래 글로벌 스타트업에 소수 지분을 투자하고 추후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그랩(270억원)에 이어 4월 수소에너지 기업 에이치투에너지까지 17개 스타트 업체에 투자했다. 그러나 아직 폭스바겐·GM·도요타·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미래차 관련 스타트업 투자 규모에 비해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임금 소송은 미래차 투자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인이다. 기아차 노조는 9년간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승소하며 파업을 마무리 짓기도 했다. 기아차 노조 2만7,000여명은 통상임금 확대 소송을 제기했고, 기아차는 패소했다. 기아차는 충당금 9,777억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1조1,575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회사는 충당금이나 이익잉여금으로 새로운 미래차에 투자해 경쟁력을 갖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달래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 셈이다.
◇노동생산성 높여야 투자 늘어난다=우리나라는 한때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으로 꼽혔지만 현재 위상은 바닥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자동차 생산 대수(95만7,402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96만2,803대) 대비 0.6% 줄었다. 전환배치나 생산 라인 조정 등 노동 유연성 부족으로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은 경쟁 국가였던 멕시코에 6위 자리를 내어주고 7위로 밀렸다. 지난해 양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 격차는 6만9,000대 수준이었지만 올 1·4분기 7만2,000여대로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고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굳어 있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2010∼2017년 제조업 1인당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2.8% 증가해 41개국 평균 증가율인 3.5%에 뒤졌다. 반면 단위노동비용은 2.2% 늘어 평균 1.7% 감소한 다른 나라를 추월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만 해도 임금은 세계 최고지만 차를 만드는 시간으로 본 생산성은 최하위권이다. 이래서는 경쟁이 될 수 없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조가 고용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면 기업으로서는 생산과 투자를 늘릴 수가 없다”며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고용시장에 영향을 미쳐 피해는 노동자가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