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컬처] 또…'코드' 바꿔 끼우는 지상파

영웅시대·국제시장 등 정치외풍 흑역사
文 정부에선 MBC '이몽' 등 이념 논쟁
공영방송 KBS, 또 고질적 편향성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 맞이해
다큐멘터리·추모 영화 등 방영 잇따라
"자유로운 제작 시스템 만들지 못하면
정권 바뀔때마다 같은 논란 반복될 것"


문재인 정부 들어 지상파를 중심으로 정권 코드에 맞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다는 해묵은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약산 김원봉을 다룬 MBC ‘이몽’과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 SBS ‘녹두꽃’ 등 역사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지상파 TV는 물론 영화계마저 정권의 압박에 휘둘렸던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스타들이 다시 방송계로 돌아오면서 또 다른 ‘화이트 리스트’ 특혜라는 비판도 있다. 방송계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들이 이념 논쟁에 휘말릴 경우 작품성을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흥행몰이에 실패할까 우려하고 있다.

MBC 드라마 ‘이몽’/사진제공=이몽 스튜디오 문화전문회사

◇정권 눈치 봤던 흑역사 반복되나= 지난 2004~2005년 방영된 MBC 특별기획드라마 ‘영웅시대’는 시청자들의 큰 인기를 얻었는데도 갑작스레 종영됐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외압 때문이라는 의혹이 파다했다. ‘영웅시대’는 대한민국 경제성장 중심이던 기업인들의 삶을 조명한 드라마였다. 특히 세기그룹 회장 천태산(최불암 분)은 현대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을,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 세기건설의 오너가 되는 박대철(유동근 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해 화제가 됐다. 이 때문에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을 지나치게 미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는 CJ엔터테인먼트가 논란의 중심지였다. 명량·국제시장(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 애국주의 코드의 영화를 대거 제작한 탓이다. 당시 CJ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정권 차원의 전방위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경식 CJ 그룹 회장은 지난해 1월 “2013년 7월 조원동 전 경제수석비서관이 VIP의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을 요구했다”며 “어색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국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이 같은 흑역사 탓인지 최근 지상파의 역사 드라마도 제작 의도와는 무관하게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과거 우편향과 달리 이번에는 좌편향 논란이 달라진 점이다. ‘이몽’의 경우 약산 김원봉을 정면으로 다뤄 방송 전부터 화제였다. 김봉원은 영화 ‘밀정’과 ‘암살’ 등에서 모티브가 된 적이 있다. 그는 항일 독립영웅이었지만 이후 월북해 1952년 3월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본부위원장까지 지냈다.

이 때문에 최근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논란과 맞물려 ‘이몽’은 보수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이몽’ 제작진은 “실제와 허구의 이야기가 섞인 드라마로, 김원봉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17일 ‘이몽’의 방송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몽’ 시청자 게시판에도 ‘남침을 한 북한 수뇌를 어떻게 영웅화하는지…’ 와 같은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녹두꽃’의 경우 그동안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촛불 혁명 등을 거치며 민중의식의 뿌리로 다시 주목받으며 이번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역사 드라마는 인물을 다루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만큼 특정 인물과 특정 배경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부여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실 정권 성향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미리 거르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몽’의 배경인 일제강점기는 근현대사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많은 논란도 야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드라마는 큰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가는데 작품이 자칫 이념논쟁 등에 휘말리게 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도 전에 뭉그러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예능도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 평론가는 “최근 예능에서 북한 관련 소재를 이전보다 많이 쓰고 있다”며 “지난 3월 종영한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예능프로그램 최초로 휴전선을 탐사하는 등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SBS 드라마 ‘녹두꽃’/사진제공=SBS

KBS1 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사진제공=KBS

◇고(故) 노무현 대통령 다큐 등도 편향성 논란= 정권 교체 이후 시사프로그램, 뉴스는 드라마보다 더 편향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중립성을 지키기보다는 정권 코드에 맞게 방향을 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송사보다 정부 영향을 더 받는 만큼 공영방송 KBS가 비판의 주요 대상이다. 지난 3월 종영한 KBS 1TV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는 “이승만 괴뢰” 발언이 나오기도 했고 지난해 9월부터 방영 중인 KBS1 TV ‘오늘밤 김제동’에서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장 인터뷰를 해 비판받기도 했다.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이전 보수정권이었다면 축소됐을 관련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지난 23일 KBS1 TV는 2008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3일-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의 촬영분을 재편집한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를 방영했다. SBS 스페셜은 지난 19일 ‘노무현: 왜 나는 싸웠는가?’를 방영했다. 지난 21일 ‘오늘밤 김제동’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특집 방송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KBS가 오랜 전통의 ‘뉴스라인’을 폐지하며 편성한 시사교양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을 두고 갑론을박이 많다. 진행자인 방송인 김제동에게 거액의 출연료가 지급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KBS와 MBC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진보 성향 독립언론인 뉴스타파 기자들을 연달아 영입했다. 방송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 외풍과 상관없이 TV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비슷한 논란은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과거 문성근·김규리 등 보수정권 시절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진보 성향의 스타들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하지만 특혜 출연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특혜라면 이전에 듣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갑자기 방송 출연을 할 때 얘기”라며 “그동안 방송에 나왔어야 했던 스타들이 다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KBS1 TV‘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사진제공=KBS

달라진 사회 분위기나 정권 교체에 맞물려 민간 문화계 차원의 자발적인 노 대통령 추모 분위기도 눈에 띈다. 지난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이후 귀향을 선택한 노무현의 마지막 나날을 그린다. 또 다른 영화 ‘물의 기억’은 봉하마을로 내려가 밀집 모자를 쓰고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노 전 대통령과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보여준다. 지난 15일 ‘물의 기억’이 공개되자마자 김경수 경남지사와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일제히 눈물겨운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은 아이들을 위해 봉하를 더욱 아름다운 농촌 마을로 가꾸고 싶어 하셨다”고 돌이켰다. 김 의원은 ‘물의 기억’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맞아 그에게 바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추어올렸다. /김현진·나윤석 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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