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서 첫 ‘법적 동성부부’ 탄생...아시아 전역으로 퍼질까

대만 타이베이시 신의구 구청 행정센터에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최초로 동성 부부로서의 법적 등기를 마친 30대 남성 위안샤오밍(왼쪽)과 린쉐인(가운데) 커플이 결혼증명서를 보여주고 있다. /타이베이=AFP연합뉴스

“오늘 결혼등기를 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고, 오는 차 안에서 울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시의 신의구청 행정센터에서 가장 먼저 결혼 등기를 마친 30대 남성 린쉐인씨는 동성 연인인 위안샤오밍씨과 결혼 증명서를 들고 감격해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의 신분증 뒷면에는 이성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동성 배우자의 이름이 새로 새겨졌다.

이날 대만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법적으로 인정받는 동성 부부가 최소 수십 쌍에서 수백 쌍이 탄생했다. 대만 국회는 지난 17일 아시아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고 차이잉원 총통이 22일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법제화 절차가 완료됐다. 전 세계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지난 1월에만 해도 25개국으로 이 중 아시아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대만의 이번 결정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동성애 수용의 바람을 일으키게 될 지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한 대만에서 결혼 등기 업무가 정식 시작된 24일(현지시간) 수도 타이베이에서 관공서 등기를 마친 동성 커플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연합뉴스

대만에서 동성 간 혼인신고가 허용된 24일 대만 전역의 관공서에는 결혼 등기를 하려는 동성 커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타이베이시 네이후구 호정사무소에서는 20년간 사귀어온 40대 남성 커플인 쉬모씨와 선모씨가 결혼등기를 했다. 쉬씨는 “우리는 20년을 함께 해오면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며 “특히 작년 배우자가 아파서 수술을 하게 됐을때 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없어 매우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법률적 권리가 생겨서 너무 기쁘다”며 웃음을 지었다.

동성 결혼 법제화를 위한 특별법인 ‘사법원 해석 748호 해석 실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향후 대만의 동성 커플들은 이날부터 관청에 결혼등기를 할 수 있으며, 이성 부부와 같이 자녀 양육권, 세금, 보험 등과 관련한 권리도 갖게 될 전망이다.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동성이 함께 반려자로 살아갈 권리는 인정하되 ‘결혼’ 대신 ‘동거’ 등 용어를 쓰는 보수적인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국회 내 표결 끝에 동성 간 결합도 이성 간 결합과 마찬가지로 ‘결혼’으로 봐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정부안이 통과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동성결혼법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만의 동성 결혼 법제화로 아시아권에서도 처음으로 동성애를 법적으로 수용하는 국가가 나타나자 대만의 변화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되고 있다. 태국은 지난해부터 20세 이상의 동성 커플에 한해 ‘시민동반자관계’를 맺고 이성 부부에 적용되는 세금 감면·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동성 결혼 자체는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입양과 관련한 규정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성소수자(LGBT) 공동체를 위한 추가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일본도 지난해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지난 2월에는 일본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단 소송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동성 커플 13쌍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건 ‘법 앞의 평등’을 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소송을 건 것이다. 일본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단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대만에서도 일부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동성 결혼 법제화가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를 위협한다며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급변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성 결혼 반대 단체를 이끄는 쑨지정씨는 대만 중앙통신사에 “동성 결혼 특별법 통과는 가정교육에 핵심적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대만 정부는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발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안착시키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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