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통화 내용 유출 파문에 대해 “정상 간 통화라는 민감한 내용을 실수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흘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커리어 외교관으로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장관으로서 용납이 안 된다. 조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엄중 처벌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이 엄중 처벌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사건이 ‘구겨진 태극’ 등 그간 외교부의 기본적인 실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국기문란에 준하는 초대형 보안사고이기 때문이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물론 자신의 책임론까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강 장관은 조기 대응으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프랑스 파리 주OECD 한국대표부에서 한국언론 특파원들과 만나 “외교부의 크고 작은 사고들에 사안의 경중에 따라 대응해오고 있지만, 이번 일은 상대국과의 민감한 일을 다루는 외교공무원으로서 의도적으로 기밀을 흘린 케이스로 생각한다”면서 “출장 오기 전에 꼼꼼히 조사해 엄중문책하라는 지침을 주고 왔다”고 말했다.
외교부 청사./연합뉴스
강 장관은 해당 외교관에 대한 깊은 실망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번 유출사건 당사자는 능력이나 직업윤리와 의식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사람이라고 장관으로서 생각했는데 그 신뢰가 져버려 진 상황”이라면서 “제 스스로도 리더십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외교부의 잇단 실수와 이어진 초대형 보안사고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영향력 강화를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비핵화 협상이 정권의 핵심과업이 되면서 청와대가 외교부의 업무를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현 정부 들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근무했던 미·일 등 한국에 중요한 국가들을 담당했던 핵심인력들이 적폐청산을 이유로 요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청와대의 현직 외교부에 대한 감찰도 계속되면서 외교관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피로감 축적이 대형 보안사건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한편 강 장관은 전날 파리 시내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신중한 태도를 촉구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회담에서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을 또다시 들고나왔다는 일본 교도통신 보도와 관련해서는 “메시지 관리에 신중해 달라고 얘기했는데 (일본 측이) 이렇게 한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각료급 회담에서 상대편의 정상을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고 비판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