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방관 국가직화 하세월...정부 ‘청년 채용 사기꾼’ 되나

2만 명 신규 채용 재원 법안 통과 안돼
국비 안 내려와 지자체가 전부 부담
채용 인원 임용 지체 불이익 예상
내년 채용 계획도 어그러질 가능성
국회 정쟁에 법안 통과 불투명

강원 산불 진화에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소방관들이 지난달 6일 오후 강원 속초시 장사동에서 잔불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속초=연합뉴스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 처리가 정쟁으로 미뤄지면서 ‘소방관 채용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안전 공약인 ‘소방관 2만 명 신규 채용’ 재원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직화가 무산되면 예산 조달 계획이 무산돼 이미 뽑아놓은 신규 소방공무원의 임용 시점이 늦춰질 수밖에 없고 내년 신규 채용도 불가능해진다. 정부가 국회의 몽니로 ‘청년 채용 사기범’이 되는 셈이다.

23일 행정안전부·소방청과 충청북도 등 지자체 관계자에 따르면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모두 소방관 신규 채용의 재원으로 계획된 소방안전교부금을 올해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당장 지난해부터 ‘소방관 2만 명 신규 채용’ 계획이 시작돼 작년 채용된 5,677명이 올해 임용돼야 하는데 이 인건비를 전부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방관 2만 명 신규 채용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으로 2018~2022년 매년 4,000명의 소방관을 채용해 2017년 말 기준으로 31.1%(정원 대비 현원)에 달하는 소방관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현재 담배개별소비세의 20%를 차지하는 소방안전교부세율을 올해 35%, 내년 45%까지 단계적으로 올려 인건비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부터 매달 지자체에 교부금으로 국비가 배분돼야 했지만 5월이 된 지금까지 한 푼도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안전교부세를 늘리는 내용의 지방교부세법 개정안에는 참고 사항으로 “소방공무원법 전부개정법률안 등이 의결되지 아니하거나 수정의결 되는 경우에는 이에 맞춰 조정돼야 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가직화 통과 없이 국비로 추가 채용 인건비를 댈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지자체는 ‘올해 국가직화가 처리되면 정부가 약속한 비용을 소급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자체 예산으로 인건비를 대고 있다. 문제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경우다. 18개 소방본부에서 지난달 채용공고를 내 6월께 선발이 완료되면 교육 기간을 거쳐 내년 1월에 임용돼야 한다. 올해 채용될 인원은 작년과 비슷한 5,000여 명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교부금이 내려오지 않으면 뽑히고도 임용이 안 돼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북·충북 등 재정 규모와 자립도가 높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임용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북 예산과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재정상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채용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갈 테니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문재인 정부의 소방관 2만 명 채용에 동참하려면 교부금을 제외하더라도 2023년까지 당장 1,0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국비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용 대란’은 채용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내년 예정된 4,000명의 신규 채용 계획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소방본부 관계자는 “국가직 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2만 명은 못 뽑는다”고 잘라 말했다. 공무원 학원가에서는 ‘2022년까지 소방관 대규모 채용 확정적’이라는 홍보 문구가 성행한 지 오래라 애꿎은 청년 취업준비생만 피해를 보게 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안 개정이 안 되면 지자체가 다른 재원을 끌어와야 하니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직화 법안 통과는 하세월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가 지난 14일 개최됐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불참하면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행안위를 통과해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이어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입법 가능성은 높지 않다. 소방청 관계자는 “국회 정상화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