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별건수사에 중계하듯 적폐몰이... "檢, 성과 위한 과욕" 비판

[김태한 삼바 대표 영장기각 후폭풍]
檢 이재용 부회장 상고심 관측에 분식수사 속도 높이며 여론 압박
"혐의 입증못한 무리한 영장... 권한남용 비판 부메랑 될것" 지적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관한 증거인멸 지시 혐의를 받는 김태한(오른쪽) 삼성바이오 대표이사가 지난 25일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기 중이던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늦은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측은 “(제가) 구속되면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해외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될 것이며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이 뿌리째 흔들린다”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했다. 이에 맞서 검찰 측은 “분식회계와 증거인멸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넘친다”며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론은 김 대표의 승리였다. 법원은 김 대표의 논리를 받아들여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삼성바이오가 관련 산업 분야에서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 등을 고려해 불구속 수사 원칙을 수용한 것이다.

26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의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지난해 5월5일 회의 소집 및 참석 경위, 회의 진행 경과, 그 후 이뤄진 증거인멸 내지 은닉행위의 진행 과정, 김 대표의 직책 등에 비춰보면 증거인멸 교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이 김 대표의 증거인멸 지시를 뒷받침할 복수의 삼성바이오 임직원 진술 등을 주요 근거로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거인멸과 분식회계 의혹의 최종 책임자 규명에 속도를 내려던 검찰 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삼성 최고위층을 향해 속도를 내던 검찰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법조계는 검찰의 수사방식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자충수를 둔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우선 다음달 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관련 상고심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검찰이 별건인 분식회계의 수사 속도를 높이는 것은 구태의연한 수사기법이라는 것이다. 법원도 검찰이 본류인 수사에서 증거 확보와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경우 별건인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대부분 영장 발부를 기각한다. 최근 김학의 특별수사단이 윤중천의 신병확보를 위한 수사권고가 아닌 별건으로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둔 상황에서 별건의 수사를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는 것은 오래된 검찰의 수사기법으로 문제가 많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김 대표의 영장 기각은 이 같은 검찰의 행태에 법원이 제동을 건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이 수사성과를 높이기 위한 여론몰이식 수사방식은 개선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컨대 검찰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후신으로 통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수장이자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사장에 대한 소환과 영장 청구 가능성을 일찍부터 흘려 부정적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이 불합리하게 비친다는 비판이다. 검찰이 언론에 잇따라 삼성바이오와 삼성전자 직원들에 대한 영장청구 소식을 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삼성 최고위층을 다시 구속해야 한다며 언론을 자극하는 행태는 수사 성과를 내기 위한 과욕이라는 평가다. 지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한 달 사이 일반 직원부터 사장급까지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삼성 최고위층을 겨냥한 무리한 소환과 영장 청구를 언론을 흘리며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며 이는 비판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수도권 지검 소속 검사는 “삼성바이오를 삼성 때리기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검찰의 여론몰이식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데 대해 검찰 내부적으로도 이제는 반성이 필요하다”며 “이 부회장의 상고심을 앞두고 검찰이 여론의 힘을 빌려 전방위적으로 삼성 옥죄기에 나서는 모양새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수사 압박이 자칫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 심판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사내변호사회 소속의 한 변호사는 “삼성 수사는 반(反)대기업 정서에다 적폐청산 요구라는 그림까지 겹쳐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네티즌의 가십거리로 전락했다”며 “여론몰이나 정치적 고려는 다른 논란을 만들 수 있고 글로벌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국가 경제에 피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

일단 검찰 수사의 성패는 증거인멸은 물론 삼성바이오 회계부정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증명하는 데 달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법원이 김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윗선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론몰이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커져 검찰이 수사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내부에서 분식회계와 이 부회장 경영승계 작업의 연관성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며 “검찰이 수사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론몰이 수사에 대한 우려에도 검찰은 최고위층 수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 임직원들의 진술뿐 아니라 압수수색 등에서 객관적 증거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당분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삼성바이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계열사 전반에서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를 지시하고 주도한 것은 계열사 수장이 아닌 삼성전자 사업지원TF라는 의심을 법원도 일정 부분 수용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 내부적으로 수사전선을 확대해야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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