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주도했다간 차기정권때 '적폐낙인'…가만히 있는 게 상책"

[불안- 공무원사회가 심상찮다]
勞정책 등 무리한 추진 역효과에
"관련업무 담당하면 불이익" 우려
핵심부서 피하려는 분위기 확산
해외연수·외부파견 신청도 줄이어
靑·與 입김에 정부 권한은 미미
"부처가 하청업체냐" 불만도 봇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은 젊은 사무관들 사이에서 인기 부서로 통했다. ‘에이스 과장’이 거쳐 가는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조(兆) 단위 매출을 일으키는 굵직한 에너지 공기업들이 산하에 있고, 무엇보다 국내 전력산업 정책을 쥐락펴락한다는 자부심이 있는 선호 부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기피 대상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되는 탈원전 정책의 선봉에 서면서다. 산업부의 한 사무관은 “에너지 쪽은 대응해야 할 업무도 많고 말도 많아 기피하는 분위기”라면서 “오히려 예전에는 인기가 없었던 통상 등 국제업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부 출신의 전직 관료는 “요즘 후배들을 만나보면 에너지 쪽은 아예 안 가려고 하더라”라며 “워낙 말도 많은데다 나중에 자신의 업무가 정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안 커지는 공무원…“안 움직이는 게 상책”=공무원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크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책들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되면서 낳은 결과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탈원전, 규제 완화, 노동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될지 고려해보지 않은 정책들이 정권 차원에서 속전속결로 추진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자 공무원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 출범 2년 만에 각종 정책의 역효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더욱 움츠러드는 것이다.

2년간 최저임금 29.1% 급등으로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이 속출하고 저소득 가구의 근로소득이 뒷걸음질하며 소득분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충분한 대책 마련 없이 덜컥 도입한 주 52시간제는 ‘버스 대란’을 촉발시켰다. 이들 정책 모두 현 정권의 국정과제인데 이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면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적폐’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예 핵심 부서를 피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주요 보직을 받아 위로 올라가려는 공무원사회 작동 메커니즘과는 정반대다. 사회 부처의 한 국장급 관계자는 “이슈가 될 때 아예 자리에 없고 해외 연수나 외부 파견을 나가 있는 게 신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게 관운(官運)”이라는 말도 했다.

1급 출신의 한 전직 관료는 “장차관을 해도 정권이 바뀌면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걸 보지 않았나”라면서 “나서지 말고 최대한 오래 하자는 분위기가 확실히 이번 정부 들어 강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 불만은 불만대로…“우리가 당·청 하청이냐”=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에서 불안 못지않게 공무원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 주도로 주요 정책이 만들어지고, 정부는 이에 끌려가는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나오는 자괴감과 피로감의 일종이다. 청와대의 정책적 입김이 이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늘공(직업 공무원)보다 친정권 성향이 강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물론 주요 위치의 행정관급에도 포진해 있다. 각종 위원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정부 부처는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경제 부처의 과장급 관계자는 “이런저런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정부는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업무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요즘에는 정치권에 치이는 일이 다반사다. 애초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방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정권 차원의 대기업·고소득자 ‘핀셋 증세’만 추진했다. 증권거래세 인하도 여당이 드라이브를 걸면서 결국 인하했다. “정부 부처가 정책 하청업체냐”는 불만이 사무관급 공무원에게서 터져 나온 이유다.

사회 부처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대화는 공무원을 종으로 본다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 관계자는 “녹음을 잘 들어보면 ‘자기들끼리’가 아니라 ‘지들끼리’라고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질 일은 정부에 떠넘기지만 정작 권한은 미미하다. 경제 부처 국장급의 한 관계자는 “정책을 낼 때 법 개정 사항은 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시행령·시행규칙만 손본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 차원에서 내려오는 정책 과제의 성격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당국자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선택권이 제한돼 있다”고 토로했다.
/세종=한재영·강광우·김우보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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