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칸(Cannes)

유럽을 제패했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한 데 이어 유럽 동맹군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814년 5월 루이 18세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지중해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그의 전성기는 유배와 함께 끝난 듯했지만 10개월여 뒤 엘바섬 탈출과 함께 상황은 달라진다. 영국 상선으로 위장한 범선에 몸을 싣고 몇 척의 배와 함께 엘바섬을 떠난 나폴레옹은 1815년 3월1일 프랑스 남동부 해안에 상륙한다. 현재 프랑스 최고 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칸 해변이다.




유럽 군주들은 엘바섬에 유배 보낸 그가 탈출해 재기할까 봐 내심 걱정하던 터였다. 우려는 현실화했다. 칸 북부 해안에 상륙한 나폴레옹은 파리 진격을 시작했고 공화주의자들과 농민들은 그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했다. 1970년에 제작된 거장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영화 ‘워털루’에는 그의 파리 진격을 막으려던 군인들이 오히려 무기를 던지고 나폴레옹에게 투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의 복귀는 100일 천하로 끝난다. 3월20일 파리로 입성한 나폴레옹은 6월 영국 아서 웰즐리 웰링턴 장군과의 워털루 전쟁에서 패해 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쫓겨가 생을 마감한다.

지중해 휴양도시 칸은 기원전 2세기께 정착민이 마을을 형성한 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슬람 유목민들의 침략 역사가 이어졌다. 현재 지명은 10세기께의 카누아(Canua)라는 마을 이름과 연관이 깊다. 카누아라는 명칭에는 ‘갈대’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19세기 말 카지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20세기에는 고급 호텔이 자리 잡으면서 휴양 도시로 명성을 얻는다. 인구 7만5,000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지만 1946년 시작된 칸 영화제가 열리는 5월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람객과 영화인·취재진들이 찾아와 북적거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칸 영화제 최고상은 처음이다. 한국영화사 100년의 노력이 이 수상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다양성과 스크린 독과점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는 한국 영화에 이번 수상이 더 큰 도약의 자극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병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