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의 조기타결 관측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가운데 미중 관세전쟁이 전방위로 확대될 경우 전 세계적으로 6,000억달러(약 711조원)어치의 국내총생산(GDP)이 증발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중국은 무역전쟁의 핵심인 미국의 경제구조 개혁 요구가 자국의 ‘핵심이익(core interest)’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강하게 맞서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역전쟁이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기업들도 방어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8일 시나리오별 무역전쟁 분석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상대 수입품 전체에 25%의 관세를 매기면 오는 2021년 세계 GDP의 0.5%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무역전쟁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우 GDP가 각각 0.8%,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3국 중에서는 중국 경제의 의존도가 높은 대만·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의 대규모 피해를 예상했다.
무역전쟁으로 증시까지 폭락하면 파급력은 훨씬 강력해진다. 블룸버그는 25% 관세가 전면 적용돼 세계 증시가 10%가량 급락한다면 2년 뒤 중국은 0.9%, 미국 0.7% 등 세계적으로 GDP의 0.6%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투자·소비 위축, 증시 추가 하락 등 악재가 연쇄적으로 터지면 전 세계적으로 6,000억달러의 GDP가 허공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경고다.
현재 미국은 대중(對中) 관세율을 차례로 높이면서 2,500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3,0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로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했으며 중국도 당장 6월1일부터 미국산 수입품 600억달러어치에 매긴 관세율을 25%로 높이겠다고 맞선 상태다. 지금까지 양국이 예고한 관세전쟁만 이어져도 2년 뒤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0.5%, 0.2%의 GDP가 줄어들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이처럼 관세전쟁의 강력한 피해를 경고하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미중 무역협상의 조기타결 관측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UBS의 탄 민란 아시아태평양 시장 담당은 27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중이 현 경제상황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쪽도 조속한 합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2020년 직전에야 무역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을 국빈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은 중국과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국 무역협상이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에서 요구하는 구조개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서구식 금융체계에 의문을 품게 되면서 대안으로 중국식 ‘독재 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NBC도 최근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을 인용해 중국은 국영기업, 보조금 중심의 현 경제구조가 자국의 핵심이익이라고 판단해 구조 변화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25일 논평에서 “미국이 중국 국영기업의 발전을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오만한 요구를 했다. 구조문제에 대한 지적은 중국의 핵심이익에 반한다”고 반발했는데 중국이 영유권 문제에서 주로 쓰이는 ‘핵심이익’을 거론한 것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CNBC는 분석했다. 금융분석 업체 윈드에 따르면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지난해 무역전쟁의 와중에 상장사에 사상 최대 규모인 1,538억위안(약 26조3,8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무역전쟁이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양국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CNBC는 2014년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이르면 올 하반기 홍콩에 상장해 20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라면서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갈등으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창영·전희윤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