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이야기] 美 '고성능 더듬이'로 北전력 손금보듯..전파·음향까지 잡아낸다

<91> 美 전략 정찰기 잇따라 한반도 출격
오키나와 기지發 'RC-135' 계열 이례적 수도권 동시 비행
기체 30년 넘었지만 내부엔 방공망 분석장비 등 최첨단 무장
美해군 정찰기도 가세.."北 미사일 추가발사 임박" 분석도

미 공군이 5월 말 수도권 상공에 투입한 RC-135W 리벳조인트 정찰기와 동형 기종. 신호정보를 전자정보, 통신정보를 파악해 적의 도발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사진= 위키피디어

미군 정찰기의 한반도 상공 비행이 잦아졌다. 미군 RC-135U(컴뱃 센트)와 RC-135W(리벳 조인트) 정찰기 등 2대가 5월 말 서울 인근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미군의 고가 정찰 자산인 RC-135 시리즈가 수도권 상공에 동시에 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군 정찰기들은 휴전선 이남에서 비행하면서도 한반도 상공 전역을 감시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수도권 인근 비행의 목적은 단 하나다. 대북 감시. 군 당국은 이들 정찰기의 비행을 통상적인 훈련과 초계업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에 대비한 사전 감시 활동으로 보인다. 미 공군뿐 아니라 미 해군의 정찰기도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

미 공군의 RC-135U 컴뱃 센트 정찰기. 적의 레이더를 전파를 잡아 방공망을 분석하는 기능을 맡는다. 미 공군은 단 2대만 보유한 이 기종을 5월 말 한반도 상공에 투입, 정찰 활동을 펼쳤다./사진= 위키피디어

◇ 미군, 전략 정찰 자산 집중 투입=미 공군의 RC-135 계열 정찰기는 약 30여대 안팎. 수가 적은 만큼 미 공군으로서도 소중한 존재다.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는 RC-135 정찰기는 모두 미 공군 55비행단(55th Wing) 소속이다. 지난 1948년 창설된 이 부대는 ‘55전략정찰항공단(55th Strategic Reconnaissance Wing)’이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었다. 1991년 현재 부대명으로 개칭됐으나 임무는 변함이 없다. 비행단 사령부가 위치한 기지도 부대 성격을 대신 말해준다. 55비행단의 모 기지는 미 본토 네브래스카주 오펏 기지. 전략미사일(대륙간 탄도탄)을 관장하고 적이 발사한 전략미사일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미 전략사령부(USSTRATCOM)도 이 기지에 있다. 미 공군 55비행단은 한마디로 미국이 보유한 국가 전략 차원의 더듬이다.

수도권에 출몰하는 미 공군 RC-135 정찰기의 발진 기지는 오키나와 가네다 기지. 한반도 상공에서 운용하면서도 오산이나 군산 기지를 활용하지 않고 장거리에서 찾아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보안과 피격 가능성의 최소화. 북한과 멀리 떨어져 직접 공격받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가네다 기지의 미 공군 전략 자산(전략폭격기)과 같이 운용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가네다 기지는 다른 장점도 있다. 활주로가 길고 격납고가 크며 조종사와 그 가족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미 공군이 보안을 위해 꽁꽁 감추는 전략 정찰기의 한반도 상공 비행이 연일 보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 군사 전문가(밀덕·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항공기에 장착된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라는 위치발신장치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을 막고 항공 당국의 관제를 돕기 위한 장치인 ADS-B를 추적하면 항공기의 국적과 출발지, 도착지, 도착 예정시간, 속도, 위치 등의 정보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전략 정찰기를 띄우고 흘려서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군의 심리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군은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2017년 북한에 경고하기 위해 전략폭격기의 비행 흔적을 일부러 남긴 적이 있다.


RC-135W 정찰기 내부. RC-135 정찰기 시리즈는 기체연령이 오래됐어도 꾸준한 개량으로 최신 장비를 탑재해 한반도 전정역의 전파 및 신호, 음향 정보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 위키피디어

◇고성능 더듬이로 북한 전력 손금 보듯 정찰=미 공군의 RC-135 시리즈는 정찰위성과 함께 미군의 2대 사전 감시 수단이다.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감시 카메라를 장착한 군사용 정찰위성은 자세한 영상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한계도 없지 않다. 정찰위성의 비행 주기를 계산해 핵 시설 등을 감춰놓을 수도 있다. 미군이 정찰기를 운용하는 이유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정찰기는 특수장비를 탑재해 영상뿐 아니라 각종 신호와 음향까지 포착할 수 있다. 미 공군이 다양한 RC-135 기종을 투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RC-135 정찰기의 기체 자체는 구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체 원형인 RC-135A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61년. 보잉사가 1957년 첫선을 보인 B 707 기체를 정찰기로 개조했다. 무려 803대나 생산된 급유기 KC-135의 기체로도 활용된 B 707 기체의 최종 생산분이 1979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기체 자체는 최소한 30년 이상 기령(機齡·Fleet Age)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첨단 장비로 가득하다. 같은 RC-135 정찰기라도 용도에 따라 성능이 다르다. 5월 말 수도권 상공을 비행한 RC-135U 컴뱃 센트(Combat Sent) 정찰기는 적 레이더의 전파를 잡아낸 뒤 적의 방공망을 분석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미사일 기지에서 발신하는 전자파도 수집한다. 미 공군도 이 기종을 단 2대만 갖고 있다.

RC-135V/W 리벳 조인트(Rivet Joint) 정찰기는 미사일 발사 전 지상 원격 계측장비인 텔레메트리에서 발신되는 신호를 포착하고 탄두 궤적 등을 분석하는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 전날인 8일과 13일에 수도권 상공을 비행한 미군 정찰기도 이 기종이다. RC-135V/W는 모두 17대가 배치돼 미 공군의 주력 통신감청 정찰기로 운용되고 있다. RC-135V와 RC-135W는 분류만 다를 뿐 성능은 동일하다. RC-135A에서 개량된 기체가 RC-135V, RC-135B를 개량한 기체가 RC-135W 정찰기다.

5월 서울 등 수도권 상공을 정찰 비행한 미 해군의 EP-3E 정찰기와 동형 기종. 남중국해에 주로 투입해온 이 정찰기의 한반도 투입은 미국이 다양한 수단으로 대북 감시망을 죄고 있음을 말해준다./위키피디어

◇해군 정찰기 등 다양한 수단으로 북 감시=미 공군 정찰기의 수도권 비행에 앞서 미 해군도 정찰 자산을 한반도에 띄웠다. 미 해군 소속 정찰기인 EP-3E가 25일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 작전 활동을 전개한 것. EP-3E 에리스(ARIES·Airborne Reconnaissance Integrated Electronic System) 정찰기는 한국 해군도 운용하는 P-3C 해상초계기를 개조한 기종으로 기령은 오래됐어도 내부는 첨단 감시 장비로 가득하다. EP-3에는 지상 감시장비와 대잠 정찰장비, 지뢰 탐지장비, 각종 전자 도청 장비 등 첨단 정찰장비를 탑재하고 있으며 하푼(Harpoon) 미사일과 MK-50 공중어뢰, MK-60 공중어뢰 등 다양한 무기도 탑재할 수 있다. 지상과 공중의 모든 신호를 포착해 분석하고 미사일 발사 전후 방출되는 전자신호와 핵실험 때의 전자기 방사선 신호 등도 포착 가능하다.

미 해군이 18대를 운용하며 9대가 배치된 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로 남중국해 감시에 투입된다. 2001년 4월 하이난섬 해안에서 중국 J-8 전투기(미그-21 개량형)가 충돌,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가 사망하고 비행 기능을 상실해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미 해군 정찰기가 바로 이 기종이다. 남중국해의 해양 감시에 활용돼온 EP-3E의 한반도 투입은 대북 미사일 발사 징후 탐지 및 북한 화물선의 환적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북한을 다양한 수단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다.

◇ 북, 미사일 추가 발사 임박?=미군의 다양한 정찰 자산 투입으로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언제든지 한반도 투입이 가능한 오키나와에 공군과 해군의 정찰기를 집중한다는 외신의 보도까지 나왔다. 북한이 미사일 또는 인공위성 등 우주발사체(SLV)를 발사하려는 듯한 정황도 있다. 후자, 즉 인공위성 발사라면 한반도 정세가 급격하게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위성 발사체는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사체에 위성을 탑재하면 인공위성이지만 핵탄두를 탑재하면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변한다. 미국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할 경우 도발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미군 정찰기들의 활발한 활동이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hong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