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31일 서울 중구 라이온스빌딩에서 열린 안민정책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정순구기자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공직사회’라는 말은 최근 급격히 흔들리는 공무원 사회를 명확히 대변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과거 정권의 요직을 맡은 공무원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가 하면 당청의 설익은 정책으로 야기된 부작용의 책임과 비판은 고스란히 공무원의 몫이 돼버렸다. 청와대와 여당의 주도로 주요 정책이 만들어지고 정부 부처는 이에 끌려가는 모습이 되풀이되면서 공무원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허탈함도 커지고 있다.
31일 안민정책포럼이 ‘정부 운영의 기조와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동욱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가 모든 결정을 내리면서 중앙행정기관에 의사 결정 및 인사 권한을 배분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부처가 청와대의 결정만 기다리면서 (경제·사회) 문제가 커진 이후에야 정부가 대응하는 모습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만기친람의 행태를 벗어나 지금이라도 각 부처에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권한을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공무원들이 사기를 잃고 복지부동할 경우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도 제시됐다. 김 교수는 “전 정부의 요직을 맡은 공무원들이 무너지는 상황이 자꾸 목격되면서 본인의 임기 안에 골치 아픈 과업이나 정부가 주력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담당하지 않으려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며 “연구과제를 발주하고 위원회 의제에 올린 후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는 식으로 시간을 지연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해결책으로는 최고의사결정 기관과 지원통제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가 과도한 권한과 역할을 일정 부분 내려놓고 이를 부처에 이관·위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청와대는 대통령의 안보·정무·인사 보좌 및 전략 기획 기능을 위주로 업무를 수행하고 국무총리실은 정책 조정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그래야 ‘청와대 정부’라거나 ‘공무원 복지부동’ 등의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청와대가 정책의 세세한 분야 하나하나까지 개입하려 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는 “물론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해야 하지만 큰 방향성만 정해주고 그 뒤는 사실상 부처에 모두 넘겨야 한다”며 “그게 이뤄지지 않다 보니 최근 공무원들이 직급에 맞는 업무와 결정을 수행하지 못하고 모두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리·감독의 적절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박시룡 서강대 교수는 “감사원이 실적 위주의 감사를 진행하다 보니까 잘 하고 있는 공무원을 격려하는 모습이 없어지고 무조건 적발만 하려 한다”며 “공무원에게 좀 더 자율과 권한을 주고 자발적으로 역할과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도 “전 정권에서 수행했던 업무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려는 공무원이 사라지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