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희 교수
미중 양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관세전쟁을 일으키며 끝 모르는 패권쟁투의 길로 들어섰다. 진작 투키디데스 함정의 재현을 점쳤던 그레이엄 앨리슨은 한반도가 패권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고 특히 북한 정권이 전쟁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해 주목을 받았다. 존 미어샤이머 등 신현실주의 학자들은 강대국 패권 다툼이 국제정치의 속성이기에 미중이 결국 타협보다는 승부를 가르려 할 것이라고 통찰했다.
문명충돌론 관점에서는 고대의 문화 전통에 자부심을 갖는 중국이 서구 문명 중심 국제질서에 순순히 편입하려 할까의 문제에 그동안 관심이 쏠렸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간 외세에 의한 수모 끝에 공산체제로 통일을 달성한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세계체제로의 통합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사회는 이 문제에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최근 중국의 국가전략은 평화굴기에서 군사·대국굴기로 급격히 전환됐다. 빠르게 확대·성장하는 경제력을 토대로 중국 지도부는 중국몽 슬로건하에 모택동의 건국과 등소평의 부국에 이은 시진핑의 강국을 향한 세 번째 혁명을 꿈꾼다. 지난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는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대국으로의 부상을 최상위 국가목표로 공식 천명한 중요한 전기로 평가된다.
중국의 야망을 간파한 미국이 강대강 대응을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 피터 나바로가 쓴 ‘중국의 파괴(Death by China)’가 논리적 준거를 제공했다. 미국은 우선 군사력의 토대인 경제력과 기술혁신부터 차단하려 한다. 이어 중국 산업망의 전면 파괴와 레짐체인지까지 모색한다. 실로 사활을 건 체제·이념 대결에 나선 것이다.
원래 무역은 상호이익을 가져다주는 플러스섬 게임이다. 관세 분쟁은 상호보복을 유발해 미국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자유무역’을 가장해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일삼아왔고 중상주의적 태도로 국제무역 규범을 위반해왔다고 분개한다. 구체적으로 보조금 등 정부 주도의 무역모델, 사이버 해킹 등 안보와 직결되는 정보탈취 행위, 그리고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자동차 등 핵심 미래산업에서의 미국 기술 ‘훔치기’ 등이 지적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화웨이 캠페인이 국가안보상 이유로 정당화되는 배경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차가운 평화(cold peace)’ 형태를 띠면서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반중 캠페인에 영국·일본·호주·대만 등을 참가시키고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정식 배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참가, 인도·태평양 연합 가담 등 그동안 중간자적·유보적 입장을 취해온 현안에 분명한 선택을 촉구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국제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는 팽창전략의 상징으로서 조공(tribute) 개념에 기초한 권위주의적·위계적 성격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더욱이 북한과 군사동맹 관계인 중국과의 연대는 가당치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국가주권과 수평적 질서를 존중하는 자유민주 패권체제에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우리 외교 노선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 지 오래됐다. 강경화 장관의 3불 발언,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몽 찬양, 최근 장하성 주중 대사의 일대일로 참가 발언 진위 논란에 이르기까지 외교·안보 전략의 난맥상은 일일이 거론조차 어렵다. 지금 미국은 전수방어 위배 논란이 일 만큼 일본 군사대국화를 묵인하며 인도·태평양 연합을 중국 견제 세계전략의 핵심으로 육성 중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탱해 온 한미일 연합은 붕괴 직전이다. 국제 외톨이가 돼 구한말 망국의 비운을 되풀이하기 전에 하루빨리 ‘인도·태평양’에 가담해 한미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켜야 생존을 기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