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인 채권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채권 매수가 지난해보다 100억달러(약 11조8,000억원)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의 활력이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발 빠르게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해외 채권으로까지 투자 보폭을 넓히고 있는 모습이다. 해외 채권은 국내 채권보다 금리가 높은데다 국내 상황에서 느끼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선진국보다 크다는 점도 해외 투자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로 풀이된다. 또 달러 채권의 경우 최근 원화 약세장으로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해외 채권(국채·회사채 포함) 매수금액은 294억2,5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89억6,800만달러보다 100억달러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달러 채권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 올해 매수한 미국 채권만 51억9,800만달러에 달한다.
공모펀드를 이용한 해외 채권 투자도 활발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해외채권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5월 31일 기준)은 1조2,164억원에 달한다. 신한BNP자산운용의 H2O글로벌본드증권펀드의 경우 올 들어 약 3,0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고 ABL자산운용의 ABL PIMCO 글로벌투자등급채권펀드도 연초 이후 900억원이 들어오면서 순자산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해외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산운용사들은 신규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이날부터 아시아 지역의 신용등급 ‘BBB’ 이상의 달러 표시 우량회사채에 주로 투자하는 ‘KB달러표시아시아채권펀드’의 판매를 시작했다. 일부 자산운용사에서는 폐쇄형으로 운용했던 기존 해외 채권형 펀드를 일종의 시리즈 형식으로 투자자금을 추가 모집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들도 해외 채권 투자자 잡기에 적극적이다. 삼성증권은 올 초 미국 국채 투자자들을 위해 ‘원스톱 서비스 전담데스크’를 신설한 바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채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내 증권사 최초로 미국 달러화로 매달 적금처럼 적립할 수 있는 ‘적립식 퍼스트 외화 발행어음’을 이날 출시했다.
해외 채권은 국내 채권에 비해 금리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미 국채 10년물의 경우 최근 하락세가 이어지며 지난달 31일 2.13%대를 기록해 20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 하지만 한국 국고채 10년물은 이보다 더 낮은 1.6%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경기 침체 우려가 글로벌 선진국에 비해 더 크다는 관측도 투자자들이 해외로 발을 돌리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한 자산운용사 글로벌 채권 운용역은 “채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리”라면서 “가령 한국보다 미국의 채권 금리가 더 높은데 경기도 좋아지자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느낌을 가지면서 해외로 선회하는 거 같다”고 했다. 또 최근 달러 채권 매수가 급증한 것은 원화 약세장으로 추가 수익을 기대하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해외 채권 투자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당분간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은 줄지 않을 것”이라면서 “채권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특히 우량 등급의 미국 국채 등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