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왼쪽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문성혁(오른쪽) 해양수산부 장관, 이개호(〃 두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명래(〃 세번째) 환경부 장관, 김현미(왼쪽)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표심을 의식한 정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책의 원칙과 객관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동남권 신공항같이 지역 민심을 들썩이게 하는 어젠다뿐 아니라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까지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매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경제정책 운영이 휘둘렸다고 해도 지난 1·4분기 마이너스 성장 쇼크를 기록한 비상상황의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포퓰리즘 정책이 과하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표심 잃을까 증세는 언급 안 해=세제 부문은 여론을 의식하고 총선을 겨냥한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기활성화를 명분으로 확장재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증세는 금기시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가 높아져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도 표심을 의식해 국민 부담을 늘리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9일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당연히 세입확충이 전제돼야 하는데 증세가 일종의 폭탄 돌리기처럼 됐다”며 “선제적인 로드맵이 필요하지만 결국 재정 여력이 소진되고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나 논의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예는 올해 일몰 예정이었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3년 연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감면 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사실상의 중산층·서민 증세라는 반발이 확산되자 당정청은 급히 협의회를 열어 3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이 불과 열흘 만에 진화에 나선 것이다.
4일 당정 협의에서는 맥주와 막걸리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는 주세 개편안과 이달 종료 예정이었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5%→3.5%) 조치 6개월 추가 연장안이 발표됐다. 주세 개편의 경우 소주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타 주종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해 지나치게 외부 비판에 얽매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선심성 대책에 지역 민심은 들썩, PK 파상공세=지역 경제 침체를 호소하는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대규모 SOC 투자 약속을 남발하는 점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이다. 특히 내년 총선의 승부처가 될 부산·경남(PK) 지역을 향한 여권의 공세가 두드러진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부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부산 지역으로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부산 이전이 거론돼왔던 공공기관들은 예금보험공사·무역보험공사 등이다. 1차 공공기관 이전 이후 제기됐던 비효율적 업무환경, 정주 여건 미비 등이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남권 신공항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국 전문기관까지 참여해 결론을 내렸지만 여당 소속인 부산시장·울산시장·경남도지사가 합심해 뒤집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기존 방침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오다 최근 “총리실과 함께 해결책을 찾겠다(김현미 국토부 장관)”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경주와 울산·부산이 3파전을 벌였던 동남권 원전해체연구소를 부산과 울산 접경지역에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도 PK 민심을 달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고등학교 무상교육 전면 도입을 1년 앞당기고 3월 예타 없이 3년간 생활형 SOC에 48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총선을 앞둔 재정 퍼주기의 사례로 지목된다.
◇공기업 부실은 눈감은 채 누진제 완화=정부와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3가지를 제시한 후 한전 홈페이지의 의견수렴 게시판에는 닷새 만에 470여건의 의견이 올라왔다. 이 중 90% 이상이 지지하는 의견은 ‘누진제 폐지(3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여론과 달리 ‘매년 7~8월 누진구간 확대(1안)’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공학적인 이유에서 정부의 선호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3안은 현재 1단계를 적용받았던 1,416만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르기 때문에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택되기 어렵다”며 “1안을 적용하면 1,629만가구가 할인을 받고 요금이 오르는 가구가 없어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진제 완화에 대해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번 누진제 개편안에서 개편 방식과 더불어 핵심적으로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던 한전의 재무부담 완화 방안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점이다. 이번 정부 들어 한전은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고꾸라지고 있다. 결국 적자 보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손쉬운 산업용 전기요금을 손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종=황정원·강광우·빈난새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