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선진국 복지지출 추이를 따를 경우 오는 2030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인구구조 변화로 국가채무비율 증가가 불가피한데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확장재정 드라이브가 가속화되는 만큼 재정준칙을 마련해 국가채무 증가속도를 억제해야 한다고 엄중히 권고했다. 9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KDI 용역 보고서 ‘지속 가능한 재정운용을 위한 국가채무 수준에 관한 연구’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지난 2015년 10%에서 2030년에는 5%포인트 이상 증가하고 국가채무 급증에 따른 이자지출 부담으로 국가채무비율이 2030년에는 5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보고서는 네덜란드·일본·핀란드처럼 지출을 관리한 고령화 선진국 추이를 좇으면 사회복지지출이 10년 뒤 15~22% 수준으로 1.5~2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 평균 추이를 따를 경우 현재보다 2~3배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KDI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2000~2015년 연평균 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5%를 상회한다. 아울러 KDI는 채무 증가율이 단기적으로 문제이며 재정지출 효율화를 통해 유사시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고서는 3% 내외의 견조한 성장이 지속되고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현재 수준에서 유지되는 경우 재정 여력이 비교적 풍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태석 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사회복지지출이 늘어나는 등 증가하는 채무 수준 자체를 컨트롤하기 어려워 단기적으로 암묵적 형태의 준칙을 활용해서라도 재정수지와 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 뒤 재정준칙 내규 마련을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공론화할 계획이지만 확장재정을 요구하는 당청의 입장을 고려하면 구체화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한편 당청은 한국은행이 국민계정 기준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면서 명목 GDP가 111조원 늘어난 만큼 국가채무비율이 떨어진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기존 38.2%에서 35.9%로 낮아지게 된 만큼 재정확대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KDI, 가파른 국가채무 경고]
채무 올 718조→ 2040년 1,930조
재정준칙 없어 그때그때 목표 제시
재정건전화법은 국회에서 낮잠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지속 가능한 재정운용을 위한 국가채무 수준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채무가 너무 빨리 증가하지 않도록 준칙화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적정한 국가채무비율 수준이 국내총생산(GDP)대비 40%냐 여부를 떠나 채무 증가 속도가 급격한 점이 문제이고, 현재 명확한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암묵적인 재정준칙을 내놓고 있어 재정지출 규모가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률 둔화와 급속한 고령화를 맞은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정책을 추진하며 확장재정을 밀어붙이고 있어 자칫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태석 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보다 공론화를 거쳐 구체적인 수치를 결정해 재정준칙을 실질화할 필요가 있다”며 “상징적이면서도 재정지출관리 투명화를 통해 국가채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채무=9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가채무 규모는 올해 718조원에서 오는 2030년 1,240조9,000억원, 2040년에는 1,930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입보다 지출 규모가 더 커지면서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내년에 6조6,000억원 적자로 돌아서 2030년 -50조9,000억원, 2040년 -132조5,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 40%에 대한 갑론을박을 넘어 불어나는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6년 후인 2025년부터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돼 복지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의무지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5.9%라고 해도 독일 18.6%, 덴마크 20.5% 등 선진국이 고령사회에 진입했을 때와 비교하면 결코 양호하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 비율은 56.9%로 60%에 육박한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이제 관리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게 되고 국가채무의 증가율을 절대적으로 통제해야 할 시점”이라며 “특히 복지 등 의무지출을 중심으로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재정준칙 없어 그때그때 목표치만=재정준칙을 도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지난 1985년 3개에서 2015년 30개로 확대됐으나 우리나라는 재정준칙이 따로 없이 매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할 때 재정수지와 채무관리 목표 수치를 제시한다. 2016년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45% 이하로, 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재정건전화법을 제출했으나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국가재정법 86조에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명시돼 있을 뿐이다. 구속력도 없고 매년 예산을 짤 때 예상치 못한 재정소요가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기재부는 지난해 2018~2022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이내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대 초반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KDI는 “암묵적 형태의 준칙을 활용해 채무 증가 속도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정 수준 이하로 동결하는 게 단기적으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재정수입에 대한 전망에 근거해 현실적으로 유지 가능한 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도출하고 이를 준칙화함으로써 재정지출 규모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준칙 적용범위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연금/건보를 포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기재부도 논란이 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보다는 관리재정수지적자 관리를 위한 내규 마련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어 이달 중 본격 공론화를 할 방침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방향성을 정하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재정준칙에 관한 진전된 논의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지출 비중 늘어나 재정 여력 감소=KDI는 사회보장비 등 이전지출 비중 증가가 재정 여력의 심대한 감소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재정관리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이 제어되지 않는데다 문 대통령이 단기적 확장재정을 주문하나 산업경쟁력 강화 등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실제 올해 만 6세 미만에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에 투입되는 예산은 3조원, 기초연금에는 15조원이 책정됐다. 또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현금수당을 지급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시행되면 2022년 1조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고, 고교 무상교육 전면 도입에 따라 연간 2조원의 국가예산이 쓰인다. 이미 문재인 정부 들어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명시된 의무지출 비중이 50%를 넘어선 상황에서 복지확대 정책의 영향으로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의무지출 증가율이 2022년 전체 지출의 51.6%에서 2030년 55.7%, 2050년 60.5%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