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논설위원의 관점] 공천 등서 '빅브러더' 위력…불법·오류 많아 '폴러코스터' 오명

■정치 여론조사의 허와 실
후보 경선·단일화·정책 현안 등
'유사 선거' 기능…영향력 크지만
조사기관별 의견수렴 방식 상이
특정 응답자 과대표집 문제 이어
가짜주소·나이 속이기까지 횡행
"조사의뢰 언론사, 감시 기능 맡고
실제 개표결과 대조 자료 공개로
여론조사 기관 경각심 일깨워야"



우리나라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빅브러더(big brother)’처럼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한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주요 정당이 후보 경선을 실시할 경우 여론조사 지지율이 공천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여론조사가 ‘예비선거’와 같은 기능을 하는 셈이다. 전략 공천을 할 때도 여론조사를 참고한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주요 정당 공천자 중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가 국회의원을 만든다’는 얘기가 과언이 아니다. 복수의 정당들이 후보 단일화 ‘드라마’를 연출할 때도 여론조사로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여론조사가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논란이 되는 정책 현안에 대해 여론조사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가 있다. ‘유사 선거’ 기능을 수행하는 여론조사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조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정당 지지율이나 정책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롤러코스터 앞에 여론조사를 뜻하는 ‘폴(poll)’을 붙여 ‘폴러코스터(pollercoaster)’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관별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 왜?=최근 정치 여론조사(이하 모든 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대한 신뢰도 논란을 일으킨 것은 크게 출렁거린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였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 5월7∼8일 전국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같은 달 13∼15일 1,5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격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일주일 사이에 1.6%포인트에서 13.1%포인트로 크게 벌어지는 과정에서 여야 정당들은 각각 의문을 제기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양대 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바뀌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이달 3~5일 전국 유권자 1,501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포인트)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율은 각각 0.6%포인트 떨어진 40.4%와 29.4%로 집계됐다. 한국갤럽이 4~5일 전국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전주와 같은 39%, 한국당 지지율이 전주 대비 1%포인트 오른 23%로 나타났다.

요즘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한국갤럽·리얼미터·알앤써치 등 세 기관의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인 인사이트케이연구소의 배종찬 소장은 “조사 기관에 따라 조사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갤럽은 무선전화 85%와 유선전화 15%를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면접을 실시한다. 반면 리얼미터의 경우 무선전화 70%, 유선전화 20%를 대상으로 자동응답(ARS) 조사, 무선전화 10%를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하는 혼용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 소장은 “전화조사원 면접에서는 소극적인 ‘샤이 보수’가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한국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고 말했다. 또 응답률이 낮을 경우 중도층과 젊은 층의 입장이 덜 반영되고 열성 지지자들의 견해가 더 표출될 수 있다. 4~5월 평균 응답률은 리얼미터 6.1%, 한국갤럽 15.8%였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조사 시점과 요일이 다른 것도 지지율 차이를 가져오는데, 주말 조사에서는 보수층의 견해가 더 반영될 수 있다”면서 “20대는 응답률이 적어 가중치로 계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점도 지지율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일 엠브레인 상무는 “조사 방법과 시점뿐 아니라 조사 기관과 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의 성격도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응답자가 조사 기관의 이름을 듣고 전화를 끊어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조사 기관의 성격에 맞춰 답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 현안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기관에 따라 찬반 기류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5월5~6일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방안에 대한 ‘찬성’ 의견(70.1%)이 ‘반대’ 의견(24.4%)의 세 배에 육박했다. 반면 5월7~8일 SBS·칸타코리아 조사에서는 공수처 설치에 대한 ‘우려(47.8%)’가 ‘기대(45.4%)’보다 약간 더 많았다. 두 조사의 응답이 크게 다른 것은 질문 문항의 차이 때문이었다. MBC 조사에서는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 고위공직자와 가족 비리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공수처 설치’라는 긍정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찬반 의사를 물었다. 반면 SBS 조사에서는 ‘검찰 개혁을 위해 불가피하고 고위공직자 비리 독립 수사가 가능해져 기대되는가, 아니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들어 야당 탄압의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되는가’로 부정과 긍정의 양 측면을 모두 거론했다. 배 소장은 “설문을 작성할 때는 현안 인지 여부 확인, 중립적 질문, 현안 이해가 어려운 경우 질문 분할 등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의 차이 왜?=2016년 4월13일에 실시된 20대 총선은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의 차이가 너무 커 새누리당뿐 아니라 여론조사도 참패한 선거라는 뒷말을 낳았다. 당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인 선거 일주일 전에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인 150석 이상을 얻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 새누리당은 122석에 그쳐 123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면서 참패했다. 당시 여론조사 실패 요인을 연구한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총선에서는 대부분 여론조사가 유선 집전화를 상대로 진행된데다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2030세대 유권자가 너무 적게 표집되는 바람에 새누리당에 유리한 조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또 “우리나라에는 부동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제3당 출현 등으로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6일 사이에 표심이 많이 출렁거렸다”고 말했다.


지난 4·3보선 때도 경남 창원성산의 경우 선거 일주일 전에 실시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는 범여권 단일 후보인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강기윤 한국당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개표 결과 여 후보가 불과 0.6%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배 소장은 “창원성산은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침묵하는 한국당 지지층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41.1%를 득표했는데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 31.7%의 지지를 받은 셈”이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을 찍었다는 응답자가 53~55%에 이르는 등 여당 성향의 응답자가 과대 표집되고 있는 것도 조사 오류를 낳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후보 경선 여론조사의 문제점=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여론조사가 후보를 결정한다.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 50%와 당원 지지 조사 50%를 합쳐서 후보를 뽑는데 당원 조사도 결국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 정당의 경선 여론조사에서 불법행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치평론가인 김병민 행정학박사는 “경선 여론조사에서 주소와 연령대를 허위로 응답하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유권자가 아닌 사람들이 표심을 왜곡하는 불법행위를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여야 정당의 예비후보들이 당원 모집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들에게 선거구 내 가짜 주소를 적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여야 정당들은 직장 주소일 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치평론가인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는 “2030세대가 50대 이상 유권자인 것처럼, 5060세대가 30대 이하 유권자인 것처럼 허위로 답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정치평론가인 배종호 세한대 교수는 “여론조사에 대비하기 위해 전화기를 100대 이상 구매하는 예비후보들도 있다”면서 “응답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준비한 전화 수백 대로 적극 응답하면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정당 경선관리위가 여론조사 설문에 넣을 후보의 직함과 경력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10~15%포인트가량 급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민주당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당에서는 황교안 대표와 관련된 직함이 매우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민주당의 지방선거 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직함과 경력 표기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여론조사에서 약체 후보를 역선택하거나 후보자와 조사 기관이 유착해 여론조사 결과를 ‘마사지’하는 경우도 차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의 오류와 조작 등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우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의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상당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를 폐지하는 대신에 선관위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조사를 의뢰하는 언론사들도 감시 기능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조사 기관들이 선거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와 실제 개표 결과를 비교해 국민들에게 공개하면 조사 기관들의 자세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광덕 논설위원 kdim@sedaily.com

[도움말 주신 분]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 소장, 이병일 엠브레인 상무,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배종호 세한대 교수, 차재원 정치평론가(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김병민 정치평론가(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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