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둥관의 화웨이 신사옥 전경./블룸버그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중 양국이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이어가는 가운데 미 백악관이 ‘중국 때리기’의 핵심 타깃으로 삼아온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일부 제재 시행을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국장 대행이 지난 4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하원의원 9명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 등 중국 통신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 시행 유예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이 전방위적인 화웨이 제재에서 한발 물러나려는 것은 화웨이를 잡으려다 미 정부와 기업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이미 적잖은 기반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미국의 화웨이 퇴출 의지가 간단하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 상·하원은 지난해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기업들의 기술 이용과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NDAA를 처리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 연방기관은 물론 연방정부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이나 정부의 보조금 및 대출 등을 이용하는 기업들은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화웨이와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제재에 그치지 않고 영국·독일·한국 등 동맹국들에도 화웨이와 거래 금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화웨이 제재에 대한 시행시기를 늦춰달라는 언뜻 앞뒤가 다른 요청을 한 것은 자칫 ‘조달 대란’이나 미 기업들의 갑작스런 도산 등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우트 예산국장 대행은 “NDAA 규정이 시행되면 연방정부 납품업체의 숫자가 급감할 수 있다”면서 “화웨이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지방 업체들이 특히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웨이와 기존 거래가 많거나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정부 납품 등을 중단할 수도 있고, 조달 사업 지속을 위해 화웨이와 거래를 끊는 기업도 매출 및 수익 감소로 경영난을 겪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WSJ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끌어내는 작업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 상무부도 지난달 20일 민간 기업들과 화웨이 간 거래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존 네트워크의 보수·점검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을 위한 목적이면 화웨이 기술을 이용하거나 미국 제품을 화웨이 제품에 쓰는 것을 90일 동안 허용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미 정부가 전격적인 화웨이 제재를 시행하면서 부메랑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지 당장 중국과 무역협상 등에서 진전을 기대하고 유화적 시그널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WSJ은 보우트 대행의 서한이 발송된 후인 8일 “미 상무부의 화웨이와 거래 중단 지침에 따라 페이스북이 화웨이 스마트폰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기본 애플리케이션으로 탑재하는 것을 불허했다”고 전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