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홍콩 시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노란 우산을 들고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이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법안 상정을 사흘 앞둔 이날 홍콩뿐 아니라 런던·베를린·뉴욕·시드니 등 세계 12개 도시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홍콩=AP연합뉴스
미국 국무부는 10일(현지시간)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데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홍콩에서 수십만명이 벌인 평화시위는 이 법안에 대한 대중의 반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 통과 시 중국 당국은 본토로 개인을 인도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된다면서 미국은 이 법안이 홍콩의 자치권을 훼손하고 오랫동안 지속한 인권 보호와 기본적 자유 및 민주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홍콩인들의 우려를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우리는 또한 개정안이 홍콩의 사업 환경을 해칠 수 있고 홍콩에 거주하거나 홍콩을 방문하는 우리 시민들에게 중국의 변덕스러운 사법제도를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도망자와 범죄자에 대한 어떤 (법)개정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광범위한 국내 및 국제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협의해 추구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홍콩의 민주화 지도자인 마틴 리 전 민주당 창당 주석을 만나 이번 법안이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한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한 국가 두 체제’의 지속적인 침식은 홍콩이 오랫동안 확립해 온 특수 지위와 국제 문제를 위태롭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홍콩이 추진하는 법안에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대만 등에서 이 법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 “외부 세력의 개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편 홍콩 일국양제에 대한 우려와 중국을 향한 견제를 담은 미국의 입장 표명은 최근 대만을 ‘국가’라고 언급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무역전쟁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미국은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언급하며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렸다. 미 정부는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으며, 이는 지난 40년 동안 대중국 외교의 근간을 이뤘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