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행사장에 중국 지도부들이 모여 있다. 밑에서 두번째 줄에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자리하고 그 아래 위에 정치국 위원들과 중앙위원들이 나눠져 있다. /블룸버그
지난달 13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정치국은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중국 공산당의 최고 정책결정기구다. 이날 주요 안건은 직전에 개최됐던 미중 무역협상이었다. 지난달 9~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간에 열린 무역협상은 끝내 결렬된 바 있다. 그 자신이 정치국원이기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인터넷 완전 개방이나 합의안 법제화 등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체제를 흔들 수 있는 미국 측 요구에 대한 다른 정치국원들의 의견을 구했고, 그들은 일치단결해 “미국의 요구가 도를 넘었다”며 협상안 반대 뜻을 표시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그동안 시 주석이 주도한 무역협상 관련 안건이 주요 의제로 정치국회의에서 논의됐다고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국회의에서 강경 대응이 결정된 후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대미 공세를 시작했다.
희토류 수출규제 추진 등 미중 무역전쟁에서 최근 중국이 보이는 강경 대응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 특유의 ‘집단영도체제’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의 집단영도체제는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그 책임도 함께 지는 구조다.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산당원들이 집단영도체제라는 동업자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에 맞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시 주석이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헌법의 ‘연임제한’ 조항까지 폐지하면서 개인 권력 강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에 묶여 있다는 점은 이달 말 주요20개국(G20)에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운신의 폭을 좁게 하는 요인이다. 다만 미국이 무역전쟁을 발동한 이유 중 하나가 중국의 독재체제라는 점에서 그동안 개인 권력을 강화하면서 서구의 의혹을 키워온 시진핑 책임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후 7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가 유지된 배경으로 중국 공산당 특유의 집단영도체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공동의 의지로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정치를 해오면서 순기능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집단영도체제의 특징은 지도부 회의와 결정 방식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회의에서는 투표를 통해 결정이 이뤄진다. 위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최상위기구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그 아래의 중앙정치국회의·중앙위원회 등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이 공산당 최고 지위인 총서기이기는 하지만 투표권은 하나다. 집단의 의사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중국 공산당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최고 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예로 들어보자. 집단영도체제는 ‘집단영도’와 ‘직무분담’을 두 개의 큰 줄기로 한다. 상무위원은 국가주석을 포함해 모두 7명이다. 현재 이들은 각각 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시진핑), 국무원 총리(리커창),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리잔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왕양), 이론·선전 담당(왕후닝),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자오러지), 경제담당 부총리(한정) 등 7개의 핵심 요직을 분점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다른 상무위원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7명이 모두 모여 투표로 결정한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들 7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인다고 한다.
상무위원회가 부문 책임자들의 모임이라면 실제 중국의 공식적인 최고 정책결정기구는 중앙정치국이다. 25명의 정치국원들도 각자 자신의 업무를 갖고 있지만 상무위원급이 아닌 정치국원은 자주권이 없고 상무위원의 통제를 받는다. 그래도 중요한 사항은 정치국회의에 올라 전체의 승인을 받는 것이 사실상 중국 정치 의사결정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13일 무역협상안이 정치국회의에 회부된 것 같은 형식이다.
중국 공산당에 집단영도체제라는 이름이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이는 사실상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끈 러시아 공산당의 ‘민주집중제’를 이어받은 것으로, 중국 공산당에서는 1927년 당 규약에 민주집중제와 함께 집단영도체제가 채택된 후 당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초기까지 견고했던 집단영도체제는 1960년대 마오쩌둥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깨졌고 이후 문화대혁명이라는 혼란을 겪었다.
이후 덩샤오핑은 1978년 이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집단영도체제를 회복시켰다. 그의 결정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을 초래한 마오쩌둥식 독재가 공산당을 궤멸시킬 것을 우려한 당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집단영도체제는 이후 장쩌민·후진타오 국가주석 시대를 거치면서 공산당의 확실한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후안강 칭화대 교수는 “정치지도자 전체가 협의해 최선의 길을 찾는 중국식 집단영도체제가 대통령이나 총리의 개인 성향에 좌우되는 서구식 민주주의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고해 보이던 집단영도체제에 다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시진핑 정부 들어서다. 이른바 중화부흥 추진과 함께 반부패 투쟁을 위해 시 주석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이 다시 손상되기 시작했다. 시 주석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정치국원은 물론이고 상무위원들도 국가주석의 통제와 지시를 받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도 원래는 경제를 담당하는 국무원 총리의 역할이지만 국가 중대사라는 명분하에 류 부총리는 직책상 상관인 리커창 총리를 뛰어넘어 시 주석에게 직접 보고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시진핑 1기 체제에서는 여러 파벌과 집단 간 권력안배가 이뤄졌지만 반부패 투쟁을 겪은 후 2018년의 2기 체제에서는 시 주석이 측근들을 대거 상무위원과 정치국원으로 채워넣으면서 사실상 1인 체제가 꾸려졌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의 10년 임기 중반에 차기 지도자를 예고하는 기존 관례도 무시하고 아직 후계자도 지명하지 않은 상태다.
물론 이러한 시 주석 체제는 중국 내외의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진핑 정부 들어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미국 등과 마찰이 심해지고 새로운 미중 관계 설정도 당면과제가 됐다. 국내적으로는 파벌의 대립과 부정부패 심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산된 권력의 집중화가 요구됐다. ‘1인 독재’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시 주석이 권력을 강화한 이유이기도 했다.
시 주석의 권력 강화에 대해서는 특히 서구 정치권과 언론들이 부정적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이 무역전쟁 발동을 결심한 계기가 지난해 3월 중국 헌법에서의 국가주석 연임제한 폐지 개헌이었다고 한다. 당초 미국이나 서구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치체제도 민주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진핑의 권력이 급격히 강화하자 이를 독재로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유지되던 중국의 ‘민주체제’를 시진핑 정부가 파괴했다고 인식한 것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자 불공정 제도와 관행으로 경제력을 키운 데 대한 미국의 감정도 급격히 악화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시 주석과 그의 측근·동료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정권 유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역협상이 결국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마저 흔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공산당원들의 동업자의식이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무역전쟁의 피해를 일정 부분 감내할 수 있다는 인식도 강경 대응에 일조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관변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은 “미국이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25%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전쟁이 미중 무역 전체로 확대될 경우에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감소는 1.00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치국회의의 미국 비난 결의는 마치 중국이라는 국가 전체가 미국에 대해 결사항전한다는 것으로 중국인들에 비쳐졌다. 그동안 시진핑의 정책에 대해 중국 내에서 간간이 제기된 불만도 무역전쟁이 악화하면서 고조된 ‘애국주의’에 묻힌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이달 말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하기로 했다. 문제는 미중 정상이 만나더라도 중국의 집단영도체제 아래에서 시 주석이 어떤 돌발적인 합의를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시황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 주석의 대외적 권한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중국 대학의 한국인 교수는 “트럼프의 요구가 사실상 공산당 독재체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가 합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의 경제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 않는 한 대폭 양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전쟁이 아니었어도 덩샤오핑 이후 40여년간 유지된 중국의 집단영도체제를 시 주석이 허물고 마오쩌둥식 독재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물론 시 주석이 국내외 어려움을 이유로 권력을 강화해나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마오쩌둥처럼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역전쟁이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 개인의 이러한 권력 강화 자체는 국내외의 반발을 사면서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