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8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배우 이정은. 1991년 연극 ‘한 여름밤의 꿈’을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온 이정은은 “제가 연기를 잘 한다기 보단 마음 씀씀이를 잘 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며 지금의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정은은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선균 분)네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 역을 연기했다. 영화의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관객의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하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사진=양문숙 기자
스스로 ‘귀염상’이다고 애교 있게 말한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반전의 느낌이 나올까 걱정 했는데, 관객들이 놀라워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스크린 속에서 뿐 아니라, 인터뷰 현장에서도 그는 속수무책으로 상대를 빠져들게 했다. 중간 중간 콧소리가 일품인 ‘문광’을 눈 앞에 불러내며, “제가 복숭아 알러지가 있어서”란 식으로 위트 있게 받아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선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한 이정은은 ‘기생충’ 제안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전했다. ‘옥자’ 때 돼지 목소리를 시키신 게 미안해서 제안을 하셨나 싶었다고. 그래서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옥자’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감독님이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하셨다. 농담하시는 줄 알고 현장에 같이 있던 분들과 웃으면서 넘어갔다. 농담으로 알아 다른 스케줄이 잡혀있었는데 여러 가지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재밌고, 신나는 작업을 무사히 같이 할 수 있게 돼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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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때까지 캐릭터를 철저하게 준비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부담감 보단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열과 성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봉준호 감독은 ‘그러지 마시죠’라는 말을 전했다. 전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봉감독은 예상 할 수 있는 기대를 “변주한다”고 표현했다. 추가적으로 집요하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주문한단다.
“오랜 시간 고민한 이야기이고, 캐릭터를 들고 오시는 분이다. 가이드가 많으니까 배우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다. 배우가 전에 했던 방식으로 연기를 할 때가 많은데 봉 감독님은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나도 모르는 낯선 얼굴, 예상치 않은 반응들이 자꾸 나오게 된다. 그래서 현장에서 재미가 있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함안댁으로 분해 ’함블리‘라는 애칭을 얻어 큰 사랑을 받은 이정은은 변주에 능한 배우다. 보통의 배우들이 하는 박자와는 다른 마력적인 엇박자 리듬을 보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관객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 밖에.
그는 “제가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는 성격”이라며, “평소엔 말이 빠르고, 판단을 빨리 내린다”고 자평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코미디처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 (상대인 나는) 빗겨간다고 하더라. 저만의 독특한 속도가 있다기 보단, 다른 배우들의 속도와 달라 변주한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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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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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은 다작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미스 함무라비‘ ’아는 와이프‘ ’눈이 부시게‘, 영화 ‘미쓰백’. ‘미성년’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그는 그간 다작을 했다고 기억하기 보단, “최선을 다해 많은 걸 배운 시간 이었다”고 돌아봤다.
“돌아가신 김영애 선배님과 작품을 할 때 제 역할은 어떤 때는 대사 두마디 하고 넘어가고 그랬다. 선배님 옆에 있으면서 배울 게 많았다. 배우로서 배우고 지나가야 할 시간이랄까. 그 때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그 사람과 함께 인생의 얼마간의 시간을 공유하는 이상한 인연이 맺어질 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연기를 하는 베이스가 된다.”
“선배님이 배우는 작품을 많이 하라고 했다. 다른 것으로 연기를 배울 수 없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배우고, 또 직접 해보면서 배우고, 옆에 동료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배우니까. 사람마다 결이 있듯이 역할에 대한 큰 욕심보다는, 서로 도울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작품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못하는 게 병이다“고 고백하기도 한 그는 ”스스로 속도와 순리가 생기는 것 같다.”며 “새로운 역할이 올 때마다 매번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대중의 관심과 다양한 작품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에 대한 해석 역시 함블리처럼 매력적이었다.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마음 씀씀이를 배워가는 것 같다. 우리가 죽어볼 수 없지만, 죽는 연기를 해보는 것처럼..결혼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보고, 이혼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보고 그렇게 매번 다른 마음 씀씀이를 배워가는 것 같다.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