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춘
태국의 재즈 제인와타난넌드가 한국 오픈 최종라운드 1번홀 그린에서 롱 퍼터로 퍼트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PGA
재즈 제인와타난넌드(24·태국)는 2주 전 퍼터를 바꿨다. 일본 투어 대회에 출전했다가 친구인 아시아 투어 멤버 스콧 빈센트(남아공)에게서 롱 퍼터를 빌렸다. 앞서 지난해 아시아 투어 2승을 거둔 저스틴 하딩(남아공)을 보고 롱 퍼터의 영감을 받았던 터다. 가슴팍 앞쪽까지 오는 퍼터의 끝 부분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샤프트를 끼워 스트로크를 하는 방식이다. 그립 끝을 몸에 고정하지 않기 때문에 골프규칙 위반이 아니다. 교체하자마자 빠른 그린을 정복하고 우승을 했으니 빌린 롱 퍼터가 ‘요술 지팡이’가 된 셈이다.
태국 남자골프의 신성 제인와타난넌드가 코오롱 제62회 한국 오픈(총상금 12억원)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제인와타난넌드는 23일 충남 천안의 우정힐스CC(파71·7,328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 트리플보기 1개를 묶어 1오버파 72타를 쳤다.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를 기록한 그는 베테랑 황인춘(45·디노보·5언더파)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상금 3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우리나라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한국 오픈에서 외국 선수가 우승하기는 2011년 리키 파울러(미국) 이후 8년 만이다. 태국 선수로는 2000년 통차이 자이디에 이어 19년 만의 우승이었다.
제인와타난넌드는 아시아 투어의 라이징 스타다. 세계랭킹은 62위로 재미교포 케빈 나(32위)에 이어 이번 대회 출전자 중 두 번째로 높다. 특히 지난달 열린 메이저대회 PGA 챔피언십 3라운드까지 공동 2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2010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당시 14세3개월 나이에 아시아 투어 대회 컷을 통과, 아시아 투어 이 부문 최연소 기록을 세웠으며 현재 아시아와 유럽 투어 활동을 겸하고 있다. 이날 한국프로골프(KPGA)와 아시아 투어가 공동 주관한 한국 오픈 우승으로 지난 1월 싱가포르 오픈에 이어 아시아 투어 시즌 2승째이자 통산 4승째를 기록했다. ‘재즈’는 아티윗이라는 본명 대신 아버지가 재즈 음악을 좋아해 붙인 별칭이다. 2016년 말에는 2주간 절에 들어가 승려 체험을 한 이력도 있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제인와타난넌드는 2번홀(파4)에서 10m 넘는 장거리 버디 퍼트를 홀에 떨구고 5번(파4)과 7번홀(파3)에서도 버디를 보탰다. 2위로 출발한 유송규(23)가 초반 타수를 잃으면서 우승 경쟁은 제인와타난넌드와 황인춘의 싸움으로 압축됐다. 3라운드까지 3타 차 공동 3위였던 황인춘은 챔피언 조 바로 앞에서 경기하며 전반에 2타를 줄였다. 한 때 5타나 앞서 순항하던 제인와타난넌드가 11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린 끝에 3타를 잃으면서 순식간에 1타 차로 좁혀졌다. 한 차례 큰 실수로 쫓겼지만 제인와타난넌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까다로운 14번(파4)과 15번(파4), 16번홀(파3)에서 잇달아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17번홀(파4)에서 3m 가량의 파 퍼트를 집어넣어 결정적인 위기를 넘긴 그는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안전하게 3타 만에 그린에 올린 뒤 가볍게 파를 기록해 1타 차 우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내 통산 5승의 황인춘은 마지막 홀 그린을 노린 회심의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지면서 동타를 이루지 못했다. 황인춘은 다음달 열리는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 출전권을 손에 넣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제인와타난넌드와 3위 재미교포 김 찬이 이미 디 오픈 출전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2장이 걸린 출전권이 공동 4위로 마친 장동규(31)에게도 돌아갔다. 제인와타난넌드는 “그 나라 최고 선수들이 나오는 내셔널타이틀 대회를 우승해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최종 목표는 미국 무대 진출인데 미국에서 한국 선수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