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력 산업인 철강 산업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중국이 내수진작을 위해 생산을 늘리면서 전 세계 원재료는 뛰는데 유통가격은 끌어내리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등 전방산업도 부진한데 이 와중에 지방자치단체는 오염물질 배출을 이유로 사실상 생산 중지을 의미하는 고로 가동 중단을 명령했다. 국가 기반 산업인 철강업의 생산이 멈출 위기인데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두 달 간 방관자 행태를 자처하고 있어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2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경북도청은 포스코가 제기한 포항제철소 고로 가동 중지 행정조치 사전 통보와 관련된 청문 일자를 약 한 달째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달 27일 포스코에 대기오염물질 무단 배출을 이유로 조업 중지 10일 행정조치를 사전 통보했다. 포스코가 곧바로 제기한 청문 요청을 경북도가 받아들였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지자체의 행정조치가 철강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이번 일로 지자체가 수천억원의 매출 손실과 조업 중단은 물론 법에 없는 조항과 관련해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있는 명령을 또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광역지자체는 고로가 폭발하지 않게 하는 안전공정에서 안전밸브(브리더)를 개방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고로 가동 정지’라는 극단적인 행정조치를 내리고 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은 정전과 번개, 화재, 단수 등 비상사태에만 고로 안전밸브를 개방해야 하는데 철강업체들이 안전 공정 때 이를 열어 법에 나열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쇳물이 쏟아지는 고로는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조업 중지로 고로 안에 열풍을 주입하지 못하면 쇳물이 굳어 사용하지 못한다. 10일간 조업을 멈추면 고로 내부가 굳어 복구에만 3개월, 8,000억원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철강협회는 보고 있다. 철강업계는 “밸브 개방 외에는 안전 조치를 할 방법이 없는데다 오염물질이 얼마나 배출되는지 기준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지자체들은 강경한 분위기다. 충남도는 현대제철(004020) 고로를 10일간 멈추라는 행정조치를 확정했다. 전남도는 파급을 우려해 가동중지 대신 과징금을 매긴다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는 사이 철강업계에 미중 무역전쟁의 그림자가 덮치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위기에 몰린 중국 정부는 올해 11조위안(약 1,851조원)의 재정을 투하해 내수 진작에 나섰다. 낙후된 중서부 지역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이 대거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중국의 철강 생산량이 올해 5월까지 4억톤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중국의 철강 생산이 가파르게 늘자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세계의 고로인 중국이 철강 생산을 늘리면 철광석을 빨아들여 원자재 가격이 뛴다. 반면 넘치게 생산된 철강이 해외로 유입되며 전 세계 철강 유통가격은 하락한다. 몇 년 전 과잉 생산과 밀어내기 수출로 세계 철강업계를 부진의 늪으로 밀어 넣은 사태가 재연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밀어내기 수출은 미국이 자국으로 유입되는 중국산 철강에 대해 500%대의 관세 폭탄과 생산량 조절 압박 등을 통해 해결했는데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며 중국이 다시 철강 생산에 열을 올리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벌써 업황 부진의 초입에 들어섰다. 올 2월 1톤당 87달러 수준이던 철광석 가격은 이달 117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반면 1톤당 72달러선이던 열연 강판 시장 유통가격은 6월에도 73달러로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중국산 수입 철강 가격이 3월 이후 1톤당 67~68달러선에 고정된 데 영향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전방산업도 어려워 철강 가격 인상마저 어려운 현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철강업계는 올 상반기 국내 대형 업체들과 후판 가격을 협상했지만 가격을 인상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10%를 넘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2%까지 추락한 현대기아차에 주주들은 이익 개선을 하라고 강하게 압박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영업이익률을 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강판 가격을 인상해달라는 철강업계의 요구를 받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중국이 밀어내기 수출을 본격화할 경우 철강 수출마저 감소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에서 철강 수출이 하반기 3.5%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가의 산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역분쟁으로 업황이 하방 압력을 받는데 더해 고로 가동 중단이 실제 행해질 경우 최근 2개월간 그나마 개선되고 있는 국내 산업생산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충남도를 시작으로 산업생산을 멈추라는 극단적 조치에도 “지자체 소관의 일”이라며 뒷짐만 지다 지난 21일에야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다. 산업부나 정책조정을 하는 기획재정부나 나서서 법령 적용과정에서 지자체와 주무 부처가 면밀한 협의만 했어도 이같이 극단적인 행정조치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일이 다 벌어진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 산업생산을 단번에 멈추는 명령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