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의 결혼식 주례를 봤다. 주례를 한다는 것은 늘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고 새내기 부부는 생각해볼 만한 의미 있는 주례사를 기대하기 때문에 할 말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더욱이 ‘짧게 하라, 재밌게 하라, 고리타분한 얘기하지 마라’ 등 주례사에 대한 요구도 많아 모두 담기가 쉽지 않다. 너무 짧게 하는 것은 성의가 없어 보일 것 같고 혼인의 예를 갖추는 자리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엄숙함, 그리고 결혼의 의의와 지혜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평소 강조하는 건강, 미래, 그리고 다섯 가지 마음가짐(신애덕효열·信愛德孝熱)을 중심으로 주례사를 마무리했다.
인연을 떠올릴 때 자주 들여다보는 책이 있다. 칼릴 지브란의 잠언을 담은 ‘예언자’라는 얇은 책인데 여기에는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는 유명한 시편이 있다. 이 구절은 서로 현명하게 ‘거리’를 두고 살라는 뜻이다. 나무가 서로의 그늘에서는 살지 못하듯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간격이 있어야 햇볕이 들고 바람이 통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작불을 지피는 원리도, 사람 사이를 지키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장작불이 옮겨붙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 가까이 두면 장작이 불길을 막아 버려 오히려 불은 잘 붙지 않는다. 사람 사이도 서로 마음의 온기를 전해 받을 수 있을 만큼 관계가 가까워야 하지만 그 가까움이 서로 숨 가쁘게 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취임 1주년을 맞으면서 조직 내 인간관계의 적정한 거리에 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혁신과 변화를 위한 힘의 원천도 되짚어본다. “변화를 위해서는 하나의 커다란 힘이 모여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힘이다.” 열 번 이상 본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 나는 이 대목을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군림(君臨)의 경영이 아니라 군림(群臨)의 공영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의 두뇌보다 여럿의 두뇌가 결국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그간의 깨달음은 ‘경영(經營)’이 아니라 나아가 ‘공영(共榮)’을 말하게 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함께 찍은 배우 송강호씨에게 무릎을 꿇고 상을 바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함께한 사람들과 성공을 나누는 미덕을 보여준 팀워크가 이런 영광을 얻게 한 또 다른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누군가를 대표해 연단에 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을 다시 음미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소중한 내 앞의 사람들과 지금 이 시간을 좀 더 충실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