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공연된 작은창극 ‘꿈인 듯, 취한 듯’에서 흥부역을 맡은 안숙선(왼쪽) 명창이 놀부역의 조정규 소리꾼에게 혼나고 있다./사진제공=국립국악원
“어떻게 하면 소리를 잘할 수 있을까요?”
창극을 준비하던 어린 소리꾼(장서윤 분)은 중견 소리꾼(유미리 분)에게 묻는다. “글쎄” 두 소리꾼은 분장대 앞에서 목을 푸는 안숙선(69) 명창을 쳐다본다. 명창은 공연을 앞두고 판소리 사설을 되뇌는 데 집중할 뿐이다.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도 죽어 나비 되어…” 소리꾼이 입을 열고, 북이 울리자 춘향가가 130석 규모의 풍류사랑방에 울려 퍼진다. 음향 조작이나 마이크의 도움 없이도 객석은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에 젖어든다. 최근 대형화, 서구화되고 있는 창극 흐름에서 벗어나 창극 원형의 멋을 되살리고자 한 공연의 의도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국립국악원 작은창극 ‘꿈인 듯, 취한 듯’ 중 ‘심청가’ 눈대목/사진제공=국립국악원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창극 ‘꿈인 듯 취한 듯’ 프레스 콜 무대 이야기다. 이 공연은 창극의 본연을 재현하고자 2014년부터 국립국악원이 시작한 ‘작은 창극’의 6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선보인 판소리 중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심청가’의 눈대목(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을 모아 재구성했다.
이후 이어지는 소리와 장단은 민중의 삶을 그리며 객석까지 창극 무대로 만든다. ‘수궁가’의 토끼 배를 가르는 대목에선 서로 속고 속이는 인간사를, ‘흥보가’에서는 ‘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풍자한다. 호령 통성이 가장 강한 ‘적벽가’에서는 소리꾼의 목을 빌려 답답함을 토해내기도 하고, ‘심청가’에서 심학규가 눈을 뜰 땐 그의 희망과 기쁨을 함께 맛본다. 관객들은 추임새로 화답하며 판소리를 함께 만들어간다.
국립국악원 작은창극 ‘꿈인 듯, 취한 듯’ 중 ‘적벽가’ 눈대목/사진제공=국립국악원
‘작은 창극’은 규모가 작다는 의미도 있지만, 판소리 하나로 소리에 집중했다는 뜻도 있다. ‘흥보가’와 ‘심청가’에서 안숙선 명창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에서는 중견 소리꾼과 젊은 소리꾼이 돋보인다. 특히 ‘적벽가’에서는 조조역을 맡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유미리 명창의 강인한 소리가 도드라진다.
다섯 바탕이 끝나면 중견 소리꾼은 안숙선에게 “선생님, 어떻게 하면 소리를 잘할 수 있나요?”하고 묻는다. 명창은 무엇인지 모를 말을 하고 분장실을 떠난다. “공연 10분 전입니다.” 객석 뒤에서 조연출 목소리가 들리며 무대와의 경계는 또다시 허물어진다.
공연은 안숙선 명창이 소리 인생을 회상하듯 펼쳐진다. 안숙선에게 공연을 앞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물으니 그는 “나이를 먹으니 치매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본을 보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계속 연습한다”며 “목이 안 나오면 천하장사라도 소리를 할 수 없기에 군목질로 목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기학 연출이 “안 명창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판소리 기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한 그대로다.
안숙선에게 마지막에 무슨 말을 전했는지 물으니 그는 “나도 몰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선생님이 소리 밥을 먹듯 입에 달고 살라고 했다”며 “인생살이처럼 소리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공연은 27∼29일 열린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