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워싱턴 벗어날뿐...美대통령 휴가지는 '작은 백악관'

참모·보안요원 등 200명 따라붙어
전쟁·경제위기 등 위급한 순간 대비
100만弗 넘는 비용 호화휴가 눈총도

버락 오바마(가운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2년 5월 19일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통령 전용별장 캠프데이비드에서 주요 8개국(G8) 정상들과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대통령에게 휴가는 없다. 다른 풍경을 볼 기회가 있을 뿐이다.”

제40대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수시로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목장을 찾는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남편을 두둔하며 한 말이다.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샌타바버라 목장으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 업무에 매여 있기는 휴가지라고 다를 게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낸시 여사의 푸념처럼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의 휴가지는 백악관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수백 명의 인력이 대통령 휴가에 동행하면서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받는다. 휴가 때마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물론이고 비밀정보 요원, 군사고문, 통신·교통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대통령이 휴가기간에도 워싱턴에서 하던 일 대부분을 할 수 있도록 약 200명의 인력이 따라다닌다”고 설명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55년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전용별장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있다. /위키피디아

이처럼 대통령 휴가에 수백 명이 따라붙는 것은 휴가기간에도 전쟁이나 경제위기·시위 등 대통령의 판단이 필요한 위급한 순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정치·외교·경제·국방 등 국내 각 영역뿐 아니라 국제기구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보니 한시도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휴가 중 기자회견을 여는 것도 다반사다. 연임을 위해서는 지지율 관리가 필수라 휴가기간에 정치자금 모집행사에 참가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사라지기는 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라고 해서 매주 방송되는 대통령 라디오 연설 녹음을 건너뛰지도 않았다. 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대통령 휴가에 대해 “업무가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 휴가는) 휴가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수시로 찾는 휴가지에는 ‘작은 백악관’ ‘겨울 백악관’ 같은 별칭이 붙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나 휴가 때마다 찾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가 대표적이다. 제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이 겨울마다 찾았던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해군장교 숙소 역시 ‘트루먼의 작은 백악관’으로 불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찾던 조지아주 웜스프링스 별장 /조지아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그래도 워싱턴 밖의 ‘제2 집무실’은 머릿속이 복잡한 대통령들에게 숨구멍을 마련해줘 중요한 결단과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카리브해로 열흘짜리 낚시 여행을 떠났다가 연합군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연합군에 운임료 없이 무기를 빌려주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생각해냈고 이 법을 토대로 이전까지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미국이 전쟁 개입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연합군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지난 1981년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주말을 보내다가 파업에 가담한 항공관제사 1만1,300여명을 모두 해고하라고 지시한 일은 그의 민영화·구조개혁 정책을 설명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말 마러라고리조트로 11일짜리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면서 “인프라 사업과 북한 문제를 포함한 2018년 어젠다를 구상하고 돌아오겠다”고 장담했다. 이듬해 2월 그는 약속대로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내놓았고 같은 해 6월에는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인력 수백 명을 동원해 호화휴가를 떠나는 대통령들을 바라보는 미국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휴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띄우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의 시간당 운영비용만도 18만달러에 달하는 등 대통령의 휴가에는 엄청난 혈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WP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휴가를 가면 백악관에 머물 때보다 100만달러(약 11억 5,600만원)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든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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