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미국의 최장기 호황 뒤에 오는 것

손철 뉴욕특파원

손철 뉴욕특파원

7월이다. 미국은 이달부터 새로운 역사를 쓴다. 지난 1990년대 10년간 구가했던 최장기 호황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이달에도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되면 2009년 6월 이후 121개월 연속 경기 확장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경기의 확장 또는 위축 여부는 전미경제연구소가 후행적으로 판정하지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을 만큼 최근 미 경제 상황이 좋아 신기록은 ‘따 놓은 당상’이다. 연말까지 최장 호황 기록이 매달 경신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인 3.6%의 낮은 실업률로 곳곳에 일자리가 넘쳐나고 증시도 사상 최고치에 이르고 있어 일반 국민조차 미국 경제가 좋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이 1년을 넘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미 경제의 호조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 2,500억달러 규모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겼는데도 물가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목표로 하는 2%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미국을 세계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올려놓은 ‘셰일’ 생산이 계속 늘면서 세계 3대 유종 중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가장 낮게 형성돼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낳은 공유 경제와 자율주행차, 배송 혁명 등도 물가 하락에 일조하는 한편 미국의 부(富)를 키워나가고 있다. 농업과 제조·서비스 등 1·2·3차 산업이 줄줄이 선전하는 가운데 세계 최강인 금융업은 한층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 최대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지난 1·4분기 92억달러의 순익을 남기며 미 은행 역사상 최대 분기 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듯 경제도 좋은 날이 길면 그만큼 침체의 시기 또한 가까이 와 있음을 뜻한다. 이는 경제학 이론의 기본이자 역사가 입증한 사실이다. 누구보다 경기 흐름에 민감한 월가의 투자 귀재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일부 큰 손 투자자들은 벌써 위험자산인 주식을 점진적으로 팔아 치우고 추가 투자에는 신중하면서 현금을 쌓고 있다. 안전자산인 금값이 수년간 저점을 맴돌다 최근 상승세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자동차 ‘빅3’는 파티를 끝내고 구조조정에 열중하고 있으며 기업공개(IPO)로 대박을 친 유니콘 기업들도 과도한 씀씀이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을 향해 작정하고 중국을 손보면서 무역전쟁 장기화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는 언제든 스스로 시작한 무역전쟁을 중단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하지만 6월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치른 ‘오사카 결투’의 결과가 웅변하듯 미중 무역전쟁은 이제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니게 됐다. 특히 양국이 휴전을 선언한 무역전쟁은 미중이 대치 중인 전선 중 한 분야에 불과할 만큼 양국 간 대립의 폭과 분야가 크고 다양하다.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켰지만 경기가 후퇴하면 독박을 쓸 처지에 몰려 있는 연준은 아마 이번 달을 포함해 하반기에 한두 차례 기준 금리를 내리며 부양책을 쓸 것이다. 하지만 한번 꺾이기 시작한 경기를 몇 차례의 금리 인하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향후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대응 여력마저 줄게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전문가들 설문에서 내년 중반쯤 미국의 경기 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오는 2021년 초반 경기 침체를 예상한 전문가들까지 합치면 절대다수가 향후 1년에서 1년 6개월 내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셈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나 미국 대선 등 정치적 불확실성마저 커 향후 뉴욕 증시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치며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지난 1·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한국은 글로벌 불황에 대비해 할 일이 미국보다 더 많지만 준비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정부가 1998년 미증유의 경제 위기를 맞았던 비상한 심정으로 북한이 아니라 경제에 ‘올인’해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